매거진 산문

술은 잘하지 못하지만

술은 꽤나 도움이 되니까

by 파르르

친구와의 술자리에선 기어코 밤을 새운다. 소주라면 서 너 잔도 제대로 마시기 어렵지만 - 손끝이 저려오고 머리가 아파서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한다 - 술자리만큼은 누구보다 좋아한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는 보통 부차적인 이유가 따른다. 술잔을 건네며 주고받는 인사치레가 좋고, 홀짝이며 꺼내놓는 케케묵은 진심들이 매력적이다. 주객전도라지만, 술자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사실 술자리의 주인공은 술이 아니다.


진실게임이란 놀이가 있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적당해진 취기와 함께 한 사람을 지목해서 질문에 답하는 게임. 대답하지 않을 권리도 주어진다. 소주 한 잔 원샷. 곤란하거나 어려운 질문일수록 게임은 재밌어진다. 학창 시절엔 주로 '누가 누구를 좋아하네~.' 등 시시콜콜한 연애 얘기로 끝나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하지 못했던 말, 평소엔 하기 어려웠던 말들을 하곤 한다. 뭐 연애 얘기도 사실은 그런 계열인가 싶다. 세상에 하지 못한 말들의 서사만 모아도 팔만대장경이다.


이제는 굳이 진실게임을 하지 않아도 진심을 말할 수 있다. 너무나 드러내는 것 아니냐며 아버지는 걱정하시겠지만 - 아버지가 내 브런치를 읽고 있는 줄은 몰랐다 - 진심을 말하는 건 결국 해내야 하는 일이라. 꾸며낸 말들은 어딘가 어색하다.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속이 뒤틀려있기 마련이다. 부끄러우면 술의 힘을 빌리면 된다. "나 사실 술을 잘 못해서 금방 취해버린다."라며 진심을 말할 핑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잘 취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취해서 진심이 튀어나오는 서투른 사람은 아니다. 단지 아직은 어색한 진심이라는 단어를 술의 이름으로 친근하게 만드는 것이지. 나는 한사코 진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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