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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May 02. 2021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역설로 뒤섞이는 존재의 의미는 이렇게도 가볍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구분하고 있는 것일까. 가치의 판단과 비교는 어디에서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나마 타당한 이분법은 무거움과 가벼움이라고 외치지만,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를 통해 열정적으로 분해되고 와해되는 이분법의 세계. 공산과 자본주의는 선과 악인가. 전쟁의 결과가 선과 악을 낳았는지. 2차 세계대전 혼란의 시기를 밀란 쿤데라는 혼란의 시기로 풀어낸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 고유의 가벼움. 눈 앞에 펼쳐지는 것들의 무게감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혼란을 통해 기준을 흐리며 쿤데라는 물감을 증발시킨다.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무거움이다. 관계는 맺을지언정, 동침은 하지 않겠다는 사랑의 미학 속에서 100만 분의 1의 확률로 발견되는 무언가를 쫓아 매일을 헌신하며 사는 토마시. 그 앞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인의 존재는 포대기에 감싸져 내려온 아이처럼, 무언의 책임감을 또다시 느끼지 못할 중압감을 남기며 자신의 키치를 파괴한다. 가장 크게 파괴된 것은 테레자처럼 보였지만, 극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끝내 파괴되는 것은 사실 토마시도 테레자도 아닌 전반적인 세상을 이루는 기준점의 파괴. 다 같이 춤을 추며 무너지고 쓰러지는 공간에서, 두 침대가 붙어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파괴가 슬픔이 아님을 서사하는 듯하다.


 한편 사비나는 벗어나기 위한 존재이다. 가벼움을 쫓아 가벼움이 되어버린 존재. 수없는 배반의 과정으로 세계와 철저히 분리되는, 스스로를 거절하며 쌓아 올린 첨탑은 공허함으로 다가가는 듯하다. 손아귀에 쥐었을 때야 말로 사라져 버리는 사비나는 토마시에게는 가벼움이었지만, 프란츠에게는 탈출이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통해 탈출하게 되고, 배신하게 되고,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 끝에선 또 다른 강요와 압박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비문 앞에서 정의라는 이름은 그렇게도 쉽게 쓰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놀랍게도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한창 친구가 없어서 집에서 책만 읽던 시절에, 몇 권 안 되는 고전 소설이 집에 있었다. 어머니가 도달하려 했지만,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 내 방에서 잠자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책상 아래를 뒤적거리던 12살 배기는 철저하게 묘사된 정사의 과정을 지켜보며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고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남들보다 사랑 앞에서 조금 더 성숙하고 진솔하려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은 무심코 읽은 밀란 쿤데라의 몇 줄이 남긴 흉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12살은 사랑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고, 사랑보다는 섹스를 더 쉽게 이해하며 조숙한 태도로 사랑의 과정을 탐색했다. 한때는 토마시로 살고, 한때는 프란츠로 살고, 한때는 사비나로 살며. 선으로 태어나 악으로 편집되는 모습을 겪고 다시 서게 된 선택의 순간마다, 후회의 무용함과 정의의 위선을 느끼며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자주 느끼곤 했다.


 서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생은 무겁고 가볍기도 하다.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다가 하루는 허망하고 하루는 충만한 것들이 반복되는 역설의 고리가 한없이 가볍게 치솟는다. 누군가의 평생도 단말마 비명이 주는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꿈꾸고 욕망하고, 좌절하고 한계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키치를 부수고 메타포에 젖는 것. 2021년 서울의 봄도 1968년 프라하의 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그래야만 했고, 나는 가만히 앉아 도치되어버린 제목을 어루만졌다.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동정 삼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는 껍데기고, 그 안에서 뭔가가 보고, 듣고, 두려워하고, 생각하고, 놀라는 것이다. 이 무엇, 남아 있는 잔금, 육체로부터 추론된 것, 이것이 영혼이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테레자는 그녀들과 더불어 노래를 했지만 즐거워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노래를 한 것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에게 살해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때는 늦봄이었고 날씨는 더워서 창문마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프란츠는 공원에 도착했고 저 먼 곳 너머로 종교회 성당의 원형 지붕이 아른거리며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배신한다는 것은 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배신이란 줄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실수로 붉은 물감이 흘러내렸던 그림. 그렇다. 그녀의 작품들은 실수의 아름다움 위에 구축된 것이고 뉴욕이야말로 그녀 그림의 은밀하고 진정한 조국이었다.
사비나의 보석이 흉하다고 마리클로드가 말한 이유는 그녀가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는 점점 더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는 아홉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진실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구원하는 배신에 도취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타며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
그녀는 가벼움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사내는 즉시 총구를 내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우린 할 수 없습니다. 그럴 권리가 없어요."
벤치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후까지 늑장을 부리는 몇몇 벤치가 여전히 보였고, 곧이어 노란 벤치 하나, 조금 후 또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른 벤치 하나가 나타났다.
그 결정 뒤에는 보다 심오한 무엇, 자기 자신의 이성적 사고로도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이 숨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삼심년 전쟁에서 당시 체코인들에게는 용기보다 신중함이 필요했던가?
2차 세계 대전에서 그들에게는 신중함보다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들이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자고 있는 테레자가 끔찍한 가위에 눌렸는데, 그는 그녀를 깨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삶을 관찰하는 상상의 눈을 처절히 필요로 했기에 이따금 그녀에게 긴 안부 편지를 쓰곤 했다.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 카레닌이 쉬고 있다. 그는 작은 크루아상 두 개와 벌 한마리를 낳았다.
하느님 맙소사,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
토마시가 문을 열고 불을 켰다. 그녀는 나란히 붙어 있는 침대 두 개와, 머리맡 램프가 달린 탁자를 보았다. 불빛에 놀란 커다란 나방이 전등갓에서 빠져나와 방 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희미하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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