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몰랐던 연차라는 존재
"오늘 회사 안 가도 돼?" 이른 아침 어머니가 물었다. "엄마, 저 오늘 연차 냈어요.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회사에다 말했어." 둥굴레차를 내리며 나는 답했다. "연차는 무조건 나오는 거니? 이렇게 갑자기 써도 되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니가 이어서 물었다. "회사에서도 물어보지 않는 이유를 엄마가 다 물어보시네. 응 연차는 웬만하면 자유롭게 쓰는 편이죠."
두 달 전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벌써 5번이 넘게 다닌 회사인데도 부모님은 어떤 회사인지, 긴장은 되지 않는지를 매일 물었다. 직장 생활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라지만, 그래도 다섯 번째쯤 되면, 대충 어떻겠구나 예상이 된다. 당연히 조금은 어색할 것이고, 적응도 필요할 것이며 그러다 보면 또 지낼만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외로 힘든 점은 이런 회사 생활을 부모님께 매번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은 이번 회사는 어떤 회사이며 어떤 일을 하고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를 매일 궁금해하셨다. 이직이 잦은 내 탓도 있겠지만 사실 부모님께는 여전히 사무직이 낯설다. 자신들이 겪은 고충과 피로함이 걱정되면서도 다른 직종의 일이라 마음만 앞서곤 하신다. 가끔씩 전해주시는 조언은 조금씩 어긋날 때가 많다. 점심 메뉴는 상사의 취향을 따르라거나, 기회가 되면 자리 청소를 해 놓으라던가 등 조금은 어색한 조언이 따를 때가 많다.
가끔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 목전까지 튀어나온다. 고객을 만날 일이 없다던지, 사무실 문을 열 일이 없다던지, 청소는 외부 업체를 통해 진행한다던지 등 당연하게 제공되는 조건들이 부모님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매일 남아서 사무실을 청소했었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 문을 열었다. 부모님께 일은 그런 것이었다. 두 분이 해온 노동의 시간들은 아들의 직장 생활 앞에서 힘을 잃는다.
아무리 직종이 달라도 도움이 되는 조언들도 있다. 꾸준한 직장 생활을 위한 체력 관리라던지, 너무 많은 감정을 내색하지 말라던지. 사회생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님에게 듣는 조언은 나침판이 된다. 고충에 공감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시절의 열악했던 환경이 눈 앞에 그려진다. 대기업도 주 6일을 실시하던 시기에, 중소기업, 아니 소상공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됐을까. 퇴근길에 맛있는 것을 사 오고 싶으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부쩍 퇴근길에 순대를 포장해 오는 일이 늘었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가끔씩 가던 장어집인데, 오전 10시에 갔는데도 인파로 북적였다. 1.5kg를 주문하려던 어머니를 말려 2kg을 주문했다. 계산서에 적힌 13만 8천 원을 보며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집에 오는 길에 식곤증으로 곤히 잠이 든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외식은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행사였다. 특별히 가난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못 해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두 분의 벌이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아껴야 했는지 금방 계산이 됐다. 0에서 까딱하면 마이너스, 가족 네 명의 생활비로는 여지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그럼에도 주 6일씩 출근을 하고, 누구보다 먼저 사무실 문을 열고 닫고, 자리를 청소하며 아끼고 모으고 모아서, 지금은 장어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렇게 30년을 키워내신 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는 고작 장어를 사는 일 정도이다. 목돈이 빠져나간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잠깐이나마 헤아렸다.
벌써 5번째 회사지만 아직도 부모님은 '연차'라는 개념을 신기해한다. "여름휴가 같은 거야?"라며 물을 때면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근로기준법 상으로 1년의 일정 기간의 유급 휴일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상공인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몰랐다는 이유로 연차 없이 살아온 부모님에게 어떻게 연차를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난 세월을 부끄럽거나 원망하시지는 않으실까? 오늘도 대충 일이 있어서 쉬었다고, 연차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내년에는 꼭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를 갈 생각이다. 연차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퇴사 압박을 받으면 과감하게 퇴사하시라고, 내가 어느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