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를 세우는 오지랖

작은 오지랖을 부려주세요

by 최광래

5년 전 제주에 갔을 때, 작은 오름에서 길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함덕 해변 근처였으니 서우봉이었으려나. 비가 오는 날 우산도 없이 흙바닥을 걸으며 이리저리 헤맨 기억이 난다. 이리저리 구르다가 까진 다리도, 다 젖은 머리도 괜찮았으니 방향만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바른 방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버틸만했으니까. 1년 전, 다시 찾아간 서우봉에는 이정표가 있었다. 조금 조악할지라도 사람들에게는 충분했다.


30년 수도권 살이에, 처음 찾아간 서울숲에는 샛길이 있었다. 카페 거리와 서울숲을 잇는 사이를 두고 작은 표지판이 나를 반겼다. 이 표지판은 누가 만들어 둔 것일까. 작아서 무시할 수도 있었던 길, 내가 서울숲에서 길을 잃지 않은 건, 그 오지랖 덕분이었다.


이정표를 세우는 사람의 목적은 자랑이거나, 존경받고자 하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은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그 마음만큼은 어떠한 보상 심리에도 가려지지 않는 사실이다. 오지랖의 결과는 보통 부담이나 잔소리가 된다. 그럼에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다는 찰나 또한 존재한다. 내 친구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당신의 오지랖, 누군가에겐 그런 일이다.

KakaoTalk_20210607_225559905.jpg 서울숲에서 발견한 작은 오지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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