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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May 08. 2021

형, 책은 왜 읽는 거예요?

마장호수행 드라이브

 "형 제 조카가 9살인데. 벌써 책을 읽어요. 동화도 아니고 뭐더라... 그 수학 책 기억나세요?"

 "수학귀신?"

 "네네 맞아요. 그걸 읽는다니까요. 참 대견한 것 같아요."


 마장호수로 가는 길, 창우가 말했다. 주말을 맞이해 가볍게 드라이브나 가자고 모인 세 남자, 오늘은 왠지 여유를 느끼고 싶어 미뤄왔던 마장호수행을 택했다. 조수석에 앉느라 뒷자리에 가방을 맡겨 뒀더니, 가방이 궁금했던 창우가 가방에서 책을 발견했나 보다. 갑작스러운 책 얘기는 이토록 자연스러웠다.


 "근데 형은 책 얼마나 읽어요?"

 창우가 질문했다.

 "나?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 것 같은데."


 얼마나 책을 읽더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버스에서는 멀미를 하니까, 지하철 40분은 꽤 괜찮은 독서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 시간 반 씩, 일주일이면 일곱 시간 반의 독서 시간이 확보된다. 한 권 정도는 충분히 읽을만한 시간, 경의중앙선의 여유로움 덕분이었다.


 "와 많이 읽는다!"

 가벼운 감탄이 있었고

 "왜 읽는 거예요?"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왜 읽더라. 칭찬이 좋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똑똑하다'는 방정식이 내게 있었으니까.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했고, 그들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최근에는 책을 넘어서 글까지 쓰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많이 읽고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이왕이면 똑똑해 보이고 싶었다. 말을 줄이긴 어려우니까. 좋은 말을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좋아 보이는'에 가까운.


 "음... 경험이 넓어지니까~."


 적당한 핑계를 찾지 못한 나의 얕은 거짓이었다.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메인 디쉬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허세가 이유면서! '책 읽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은 이미지로 나타난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다니, 다들 유튜브만 보는데 특별해 보여!' 특별함에 대한 욕구였을까? 책을 읽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조금 습관이 됐다. 은근하게 "나 책 좋아해!"라고 말하고 다닌 탓도 있었다. 그렇게 되고 싶으면 약간의 설정만 있으면 된다. 보통은 창우처럼 나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까. 책을 많이 읽는 척만 해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진정성은 모르겠지만.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똑똑해진다니까."

 창우는 자신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며, 은근히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았는데.


 무언가 찝찝했다. 이 글은 찝찝함이 낳은 글이다. 경험이 넓어져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결과적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왜'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허세만 있는 것도 아니다. 허세만 있을 것이라면, 그저 읽는 척을 하고 줄거리만을 검색해서 외우고 다니면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니까, 허세를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진정성 있는 나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장호수를 걸으면서도 책에 대한 시원찮은 대답은 계속 가슴에 남았다. 출렁다리를 건널 때에도, 잉어 떼를 보며 사진을 찍을 때에도, 옥상에 앉아 바람 앞에서 커피를 마실 때에도. 나는 책을 왜 읽는 걸까?를 안에 품고 있었다. 사진첩을 보는 데 쓸데없이 사진이 잘 나왔다. 속은 어떤지도 모를 정도로 잘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에 머리를 맡기고 두들겼다. 내 행동의 이유조차 찾지 못하는 놈이 무엇을 기획하겠다고! 진로에 대한 회한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람이 남을 움직이려 한다. 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나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뜨거운 소나기가 얼굴에 가득 담겼다. 거울은 시야를 잃었다. 손을 뻗어 거울을 닦았다. 비로소 내가 보였다. 유레카!(지금 써놓고 보니 오버 같다. 하지만 그땐 거의 유레카였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 이유가 적히길 바라고 있었다.

마장호수 출렁다리, 꽤 많이 흔들렸는데. 내내 불안한 마음 때문에 신경쓰지 못했다.

 창우야, 나는 꽤나 나를 자주 잃어버리곤 해. 길을 잃거나, 주관을 잃을 때면 주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깎아내리거든.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은 질투밖에 없어. 질투밖에 남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과 지낼 수 있겠니. 그러니 혼자가 되기를 택하는데. 구차하게도 그럴 때마저 나를 위로해 줄 무언가를 찾게 돼.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사람한테 기대고 싶은 요상한 마음이지. 그래, 그래서 책을 펴는 것 같아. 사람이 만든, 사람이 묻어있는, 그렇지만 사람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책에 어떤 것들이 있어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내가 책을 읽는 행위는 그만큼 내가 불안정하다는 이야기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에 기대어 잠이 들기도, 책에 집중하며 현실을 잊기도 했으니까. 물론,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내게 책은 단편적인 순간일 뿐이고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어. 그럼에도 책을 읽는 건, 아마도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인지 사랑을 할 때면, 책을 덜 읽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어깨를 빌리니까.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고, 사람은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더라. 내가 70kg인데, 마음의 무게는 그 이상인가 봐. 몸과 마음을 기대는 일은 사람에게도 책에게도 어려운 일이었겠지. 그래도 책은 다리가 없어서 떠나지를 못하니까. 조금 더 기대 보는 거야. 책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내가 외롭다는 것이고 힘들어서 기대고 싶다는 뜻이야.


 네가 종이책이 좋은 이유를 물었지? 종이 냄새, 낭만 이런 것들도 있겠지만. 나는 가끔씩 책에 기대어 잠드는 새벽이 필요해. 그래, 나는 나조차도 잃어버릴 만큼 외로운 사람이고, 그럴 때마다 기댈 곳으로 책을 찾아. 책이 네모난 이유에 이게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네모는 의자가 되고, 침대가 되어 나를 앉히고 눕히니까.


 언젠가 책을 덜 읽는 날이 올진 모르겠어. 하지만, 이제는 외로움이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그러니 아마 평생 책을 읽을 것 같아. 간헐적으로 덜 읽는 날은 오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사람이 사람한테 기대서는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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