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펄펄 끓는 것을 좋아해
휴일의 여파가 월요병을 리셋한 목요일,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에 들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정류소 안내에 알람을 맡기며 눈꺼풀을 닫았다. 광역버스가 느려지면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을 몸이 알아채서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벨을 누르고 하차 태그를 찍었다. 정류장에서 짧게 기지개를 켜고 보니 어머니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다.
- 아들, 집에 가서 주꾸미 해 먹어. 아빠랑 식사 시간이 겹치겠네?
집에 들어가니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화구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씻을 준비를 했다. 얼핏 본 식탁에는 방금 꺼낸 김치와 반찬들, 그리고 익힌 주꾸미를 올려놓기 위한 냄비받침이 있었다. 오랜만에 아버지랑 밥을 먹겠구나 싶어서 천천히 세수를 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부엌으로 나오니 어느새 차려진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는 약간 까맣게 된 주꾸미 볶음이 있었다.
"아버지, 또 센 불에 한 거예요?"
아버지는 항상 센 불에 요리를 한다. 뭐든 펄펄 끓여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매번 요리할 때마다 센 불밖에 쓸 줄 몰라서 음식을 태우곤 한다. 국물요리는 쫄아들기라도 해서 다행이지, 볶음 요리나 구이 요리는 여지없이 꺼먼 그을음을 남긴다.
"주꾸미에서 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
약간의 잔소리 때문인지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까맣게 된 주꾸미를 집어 먹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스리슬쩍 검은 놈을 본인의 밥 위에 올려두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까맣게 된 주꾸미가 조금은 부끄러우셨나 보다. 조용히 젓가락질을 하며 주꾸미를 보시는 아버지의 눈길이 느껴졌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아버지는 확실함을 강조하셨다. 무엇을 해도 제대로 하라는 가르침은 어린 시절 훈계에서는 빠지지 않는 단골 대사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언은 자신의 부족함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아버지는 자기 자신의 유약함과 소심함으로 얼룩진 지난 시절을 싫어하셨다. 남들 앞에서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자신, 도전하지 않고 두려워만 하던 본인의 선택들을 후회하셨다. "그 덕분에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거죠."라는 어머니의 위로에도 본인의 우유부단함을 탓하던 것이 아버지셨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주로 자식들을 향했다. "더 좋은 것들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시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것이 아버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유전이 어디 안 간다고 나는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하는 아버지의 치부를 빼어 닮았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두려움이 많아서 이것저것을 재다가 쉽게 포기하곤 했다. 아버지는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본인을 보는 것 같아서 더 많은 잔소리를 하셨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조언을 멈추셨지만, 가끔씩 움찔하는 아버지의 목젖을 볼 때면 여전히 해주고픈 말씀이 많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런 아버지 때문일까 덕분일까. 나는 무언가를 격하게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확신을 주고자 힘을 줘서 말을 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때로는 공격적으로, 권위적인 문장과 태도를 내비치곤 했다. 이런 모습에 나조차도 놀라서 당황하는 순간이 여럿이었다. 공격은 상처를 남긴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년을 상처 받은 뒤에야 나는 조금 더 순해질 수 있었고,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나와 아버지에게 동시에 찾아와서, 어린 시절 매일을 충돌하던 우리는 서로가 조금 더 유순해지고 부드럽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각자, 20년과 50년의 관성을 이겨내며 우리는 조금씩 약불을 사용할 줄 아는 버릇을 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센 불만큼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펄펄 끓어야 맛있다는 아버지의 고집은 어쩌면 철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우유부단했던 스스로에게 주는 몇 안 되는 확실함, 아버지의 센 불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은 그을린 주꾸미가 '불 맛'으로 느껴졌다. "이러니까 불맛이 나네요. 맛있다." 탄 맛을 대신할 표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금세 아버지의 눈빛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여전히 아버지와 나는 가끔씩 서로가 피우는 불꽃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가 가지고 싶었던 확실함에 대해서 생각한다. 뜨거운 불꽃이 주는 확실함이 필요했던 아버지에게, 마음껏 불꽃을 피워도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식들 뿐이지 않을까. 다행히 내 사주에는 물이 5칸이나 있다. 그 물은 아버지의 센 불을 부드럽게 받아주라는 누군가의 설계가 담긴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