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고 하는 일에도 여유가 없으니.
몇 주 전, 축구팀에서 갑자기 5:5 게임 내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평소 축구장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일도 꽤 재밌을 것 같았다. 실력차가 있을 테니, 나름의 밸런스를 고려해 팀을 짰지만 밸런스는 무너졌다. 게임에서는 한명의 고수보다 한명의 트롤이 더 무섭다고 한다. 한 명으로 인해 승패가 바뀌자 너나할 것 없이 예민해졌다. 나도 어느 새 비판에 동조하고 있었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비판을 멈춰 봤지만, 이미 승부 때문에 예민해진 남정네들의 세계는 뜨거웠다. 누군가 한명을 데이게 만들고 말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어서, 게임을 마무리했다. 재밌자고 한 게임이었는데, 찝찝함을 남겼다. 표면적으로는 웃으면서 끝냈지만, 아마 그 친구는 다시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90년대 초반, 친구들과 노는 방법은 다소 뻔했다. 놀이터에 모여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운동장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했다. 예전에는 얼음땡이라 부르던 것들을 한 기억도 난다. 대부분의 놀이에서 나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고소공포증이었다. 지금 봐도 아찔한 정글짐과 구름사다리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우리는 술래잡기를 했다. 그것도 눈을 감고! 우리는 그 때 그 놀이를 '탈출'이라고 불렀다. 술래는 눈을 감고, 나머지는 눈을 뜬 채로 기구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일이었다. 당시 내 키는 130cm 언저리였는데. 최대 높이 2m가 넘는 곳에서 눈을 감은 채 친구들을 쫓아다녔다. 당연히 엄청나게 못해서 맨날 술래가 되곤 했다.
그렇지만 내가 매번 술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겁이 많은 내게 친구들은 찬스 세 번을 붙여주었다. 술래에게 잡히더라도 두 번까지는 괜찮도록 해 주었다. 눈을 감고 열심히 팔을 휘둘러 나를 잡은 술래는 "에이 뭐야."라며 잠깐은 실망했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감고 열심히 추적을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잡힐 것 같은 때에는 은근히 다른 친구들이 소리를 내 가며 유인을 해 준 덕분에 나는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탈출 놀이를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서 찬스도 사라지고, 유인도 없어졌지만 그 때 쯤에는 나도 수월하게 기둥을 오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다.
무한도전 명수는 열두살 편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을 '깍두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방송 중 박명수는 체력과 기술이 달려서 다른 멤버들보다 게임을 월등히 못하는데, 세 발 뛰기를 할 때 네 발을 준다던가.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해야 겨우 비슷하게 대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어떠한 비하나 비난도 없이, 같이 재밌게 놀아야 한다는 '의리'가 숨어있다고 느꼈다. 그래도 함께하는 게 더 재밌지 않냐는 마음 말이다.
깍두기에는 배려와 함께 기다림의 의미가 담겨있다. 단순히 약자를 배려하는 것을 넘어,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마음.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배려하기에는 다들 너무 개인적이고,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믿기에는 배신을 너무 많이 당했다. 그러니까, 축구팀에서 5:5 게임을 할 때, 우리는 배려하기에는 승부에 너무 집착했고, 기다리기에는 당장의 즐거움이 중요했다. 믿기에는 미래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비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이 그렇게 만들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깍두기를 정할 수 없는, 평등이라는 이유로 모두에게 같은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게임이 가진 아쉬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모두의 속도가 다르고 타이밍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더 챙겨주고, 누군가에게 양보하면 내 것이 사라진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무한한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궁핍할수록, 남을 챙기는 게 어려워진다. 나아가서, 남을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억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은 내게 전해질 수도 있던 것들이라는 욕심을 지우기는 어려운 듯 하다. 인생이 제로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으면서도, 내 자원이 남에게 흐른다는 생각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믿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자주 마주하니까.
그래서 최소한 노는 데 만큼은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유를 가지기에 삶은 이미 너무 치열하니까. 일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놀기로 한 날 만큼은 봐주는 것이다. 깍두기도 시켜 주고, 실수 해도 괜찮고, 망가져도 조금은 이해해 보고... 이건 참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 기분을 망치지 않겠다는 이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런 이기심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당장 화를 내서 얻는 게 시원함이라면, 화를 내서 얻는 찝찝함도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다. 무조건 참자는 말은 아니지만, 놀기로 한 날, 즐겁기로 한 날 만큼은 깍두기를 만들어 두는 것이 어떨까.
입사를 앞두고 잠깐의 짬을 내어 제주도로 왔다. 설레는 마음에 두 시간이나 이르게 공항에 도착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카페에서 잠깐 졸았는데, 보안 검색대의 대기줄을 예상하지 못해서 비행기를 놓쳤다. 양해를 구하고 새치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두었다. 감사하게도 1시간 뒤 비행기를 바로 예매할 수 있어서, 부지런히 보안 검색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고작 5만원 쯤 하는 작은 돈이라서 그럴 수도, 아니면 계획이 없어서 그럴 수도, 동행이 없으니 미안하지 않아도 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미 놓친 비행기를 짜증낸다고 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규정 상 환불도 불가능했으니, 괜히 악성 민원인이 되어 불평을 할 시간에 다음 비행기를 찾는 것이 빨랐다. 첫 날의 실수로 여행 전체를 찝찝하게 시작하느니, 그저 히히덕거리며 비행의 설렘을 다시 기다리는 일이 나았다. 딱히 긍정적이라서 해낸 게 아닌,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서 한 일이었다. 깍두기도, 여유도, 긍정도 그 선택이 합리적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속단한 건 아닐지. 때로는 기다리고 여유를 두는 일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