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

닿지는 않아도 닿고 있는 것 같은

by 최광래

최종 합격의 순간이 지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연수에 돌입했다. 대기업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그룹연수,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내 말에 친구들은 아쉬움을 더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그때가 제일 재밌는데. 너무 아쉽다." 그 때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수가 뭐 그리 재밌겠냐고. 회사 생활 한 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집에서 편히 들을 수 있었고, 쓸 데 없이 사람들을 마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연수라는 시간,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의미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신입 후배들을 맞이하기 위해 선배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진 채 우리를 웃겨주고, 즐겁게 해주려 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선배는 흥미를 끌기 위해 어깨 위에 앵무새 인형을 붙이고 행사를 진행한다. 패션왕에서 볼 법한 포즈를 취하며, 익살스러운 연기를 한다. 어색해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사석에서는 또 깊고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준다. 오직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실 그 후배라는 이름도. 계열사가 다르니, 거의 볼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월급을 주니까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럴 상황이니까 그런다고 말한다. 하지만, 월급을 준다고 모두가 진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상황에 처한다고 모두가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열심과 진심은 금방 티나는 어떤 기운, 냄새같은 것이라서. 상대방이 금방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선배들이 진심이고, 열심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시니컬한 채로 약간은 회의적은 자세를 취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만큼은 진심을 다해서 열심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동기들 모두가 그런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순간을 시니컬하게, 소극적인 태도로, 모른 체 하면서 지나보내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후회를 양분삼아 자라왔기에 이 맛이 무슨 맛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후회의 맛, 그 맛은 대충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하다. 뜨겁고 자극적인 진심의 맛과 쓰고 떫은 후회의 맛 사이에서 나는 뜨거움을 택했다. 이 진심은 가끔은 나를 눈물짓게 하고, 열불나게 할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활력을 주는 맛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뜨거움을 택했다.


팀장이 필요하다는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었다. 그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기회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 팀이 얼마나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그 일이 얼마나 힘들지, 피곤할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지금이 중요했다.


연수 이틀 차, 아직까지는 팀원들이 얼마나 내게 마음을 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연수는 집에서 6시면 끝나지만, 오후 약속을 잡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쏟고 싶어서, 생각을 집중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이 사람들의 행복과 즐거움만 생각하고 싶다.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이 사람들을 위해서 쓰이고 싶다. 그것 뿐이다.


저녁을 먹고, 팀장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어떻게 참여를 독려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 벌칙을 준다거나, 시스템을 만드는 재밌고 효과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태도에 놀랐다. 그럼에도 동시에, 내가 추구하는 진심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팀과 비교할 이유도 없지만, 우리 팀이 제일 행복했으면, 가장 친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따뜻했으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이번 연수 기간의 목표이다.


온라인 연수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화면에 비친 얼굴만으로 마주했다. 그들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걸음걸이가 어떤지, 사소한 습관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지만, 나는 무언가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이 자신감은 나로부터가 아닌 그들로부터 이끌어진 것이었기에. 나는 감히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면접날 이야기 했던 그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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