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취업 준비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퇴사, 그리고 입사를 맞이하며

by 최광래

전 배달의 민족 마케터이자, 두낫띵클럽으로 유명한 이승희 씨에게 인스타그램으로 취업 준비생이 물었다. "승희님처럼 되고 싶은 취준생입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그러자 그녀는 답했다. "취업 준비를 안 할수록 좋을 것 같아요." 그땐 얼핏 알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때로는 같은 단어도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하물며 문장은 어떠할 것인가. 그래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몰래몰래 공황장애도 겪고, 우울증에 강박증까지 겪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꽂힌 말이 있는데. '자기 세상에 갇힌 사람은 그것밖에 못 본다.'는 말이다. 딱 내 꼴이었다. 마케팅 공모전 좀 하면서 성과를 올렸다 싶고, 인턴도 나름 굵직굵직한 곳에서 하니까.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를 파악하기도 전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껍데기만 비대해졌다는 느낌이 더 잘 맞는 듯하다.


그런 말이 있다. 사상누각, 그냥 보이는 데만 집중하면서 부피를 키우는 모습 말이다. 그 속에서 내가 진짜로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중요시하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 연애 중이었는데, 의처증이라고 해야 하나? 겉으로는 쿨한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집착하는 것도 심했다. 감정적으로 기댔으면서 아닌 척도 많이 했다. 겉과 속이 달랐다. 겉은 갈수록 커지고 속은 갈수록 곯았다. 틈만 나면 자조적인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딱 그런 모양이었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은 화려하고, 스펙도 좋고, 막 떵떵거리면서 허세도 부리는 모습인데. 실제 내 모습은 진창에 산다. 취준생이라는 이상한 타이틀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러면 괴리가 일어난다. 자꾸 현실이 싫고 도망치고 싶고 내가 더 드러나고 빛날 수 있는 공간만 찾게 된다. 그때가 마침 동생들이나, 후배들을 많이 만났을 때다. 대학교 초년생들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커 보였을까? 나는 그런 존경심을 먹었다. 순수한 존경심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면서 취업 준비는 점점 더 안 풀리니까 힘들어만 했고.


클라이맥스는 19년도 겨울이다. 연속으로 최종 면접 세 개를 떨어졌을 때. 잘난 척하는 것 같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서류는 잘 붙었고 인적성도 거의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면접은 갔고, 면접을 가서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직무 면접에서는 떨어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날짜가 겹쳐서 못 본 면접이 더 많았다. 그렇게 간 최종 면접이 세 곳이었다. 근데 거기서 다 떨어졌다. 최종은 인성 면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경쟁률도 거의 1:1 수준이었는데, 거기서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계산이 안 맞았구나.' 내가 나를 부정하고 의심하게 됐다.


그렇게 바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공황장애도 같이. 내가 뭔가를 계획하고 이뤄내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나는 이전까지 목표한 것들을 성취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만큼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속은 썩어가면서도, 외적으로는 괜찮은 척, 쿨한 척, 더 멋진 척을 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 모습은 꽤 매력적으로도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는 일도 생겼지만 결국 부서져가는 속이 들켜서 서로 상처를 주고 마무리됐다. 그렇게 되니까 완전한 밑바닥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내 친구 경민이는 안다. 내가 그때 얼마나 진지하게 자살을 대했는지. 오히려 불안한 건 친구들이었다.


어쨌든 살아있게 되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의지는 아니었기에, 어떻게 상황이 극복됐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원인은 알지만 동기는 모르겠다. 그냥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닥치고 달리기나 하자는 재혁이 형이나, 헛소리하지 말고 와서 일하자는 예지 누나까지. 내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주체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서,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그냥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손을 덥석 잡지도 않았다. 피하고 피하다가 끌려가듯 잡았다. 그래도 잡았다는 게 중요한 듯하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사실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벗어던졌다. 실제로 지금도 나는 내가 '취뽀'라는 단어로 상태가 설명되는 것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나에게 이미 취업은 선택 사항이었다. 단지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이 회사에서 해야 한다면 입사를 고려하는 것이다. 어떻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는 마인드뿐이다. 조건이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당장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바라며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기회가 닿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점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걸 효능감이라고 부른다.


취준생의 관점에서는 나는 공채를 합격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그냥 기획자 최광래로서는 아무런 실패가 없었다. 그러니까 눈 앞의 일에 집중했다. 그 자리에서 힘을 썼다. 공채는 도전하지도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전 회사(잼있는인생)에서는 일하는 게 재밌었다. 그 자리에서 만족하면서 지냈다.


사실 이번에 공채를 쓴 건, 회사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금융권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회사에 말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금융사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기회가 되는 금융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고, 안되면 돌아오겠다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돌아올 생각을 하기 전에, 언제든 돌아오라고 말해 주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강력한 보험이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어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곤 하는 듯하다. 나는 그렇지 않으려고 그 기회가 대단히 감사하고 어려운 것임을 꾸준히 상기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잼있는인생은 대단하고 엄청난 회사이다. 그런 회사가 내 돌아갈 자리가 되어준다. 나는 두려울 게 없었다. 다만, 지금은 금융이라는 일을 해보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취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미 일을 하고 있었고, 내 목표는 딱히 없다. 그냥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그게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떤 회사, 어떤 직무? 약간의 조건은 되겠지만 우선순위는 따로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글은 친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취준생의 멘탈 관리에 대한 질문.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취준을 안 할수록 좋다는 말을 예전에는 얼핏 이해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공채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네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공채라는 타이틀에 우리를 가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우리의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에 갇혀서 힘겨운 2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절대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때에는 그래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취준에 대한 생각이 없어질수록 채용 과정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나는 참고로 이번에 공채 세 곳에만 지원했다. 그중 두 곳에서 최종 면접을 치렀다. 한 곳은 이미 합격해서 입사가 예정되어 있고, 나머지 한 곳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마 붙을 것이다. 아니면 떨어져도 시원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럴 자신이 있다.


사실 회사도 회사에 맞춘 인재를 뽑고 싶지 않은 듯하다. 어찌 보면 '나'다운 사람을 회사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 관계랑 비슷한 것 아닐까. 나에게 맞춰주는 사람은 고맙지만 조금 불편했다. 나는 조금 어긋나더라도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잘 맞지 않아서 떠나보낸 사람들도 있지만, 서로가 굿바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진솔하고 나다운 말과 행동으로 면접장에 서야 한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인 듯하다.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고, 이제 해야 할 일들도 많아서. 입사 소식에 축하받기보다는 걱정이나 기대를 받고 싶다. 나는 취업을 했을 뿐이지, 성공한 게 아니다. 취업은 내 삶에서 그냥 한 순간일 뿐이니까. 대단히 감사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말이 주절주절 많았다. 똑똑한 척은 이런 식으로 중독이 된다. 그래도 나는 진심으로 우리가 적당히 슬프고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이 기뻤으면 한다. 그러니까. 취업 준비생이 아니었으면 한다. 너도 나도.

매거진의 이전글자연스럽지 않은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