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에서 연결을 외치는 일
연수 3일 차, 아무리 해도 비대면 환경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모니터만 마주보고 8시간이라니! 신은 사람의 소통의 재료를 이산화탄소로 만들었나보다. 상대가 내쉬는 날숨이 없으니 이야기를 해도 영 시원찮다. 예로부터 그러지 않는가. 문자는 마이너스, 통화는 본전, 만나야 플러스라고. 사람간의 연결을 위해서는 결국 만나야 한다다.
그래서인지 연수 환경은 더 차갑게 느껴졌다. 화면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온도를 낯추는 일은 없을 텐데. 왠지 모를 차가움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닿으려 치면, 전자파를 내보내며 솜털을 지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치지직 거리면서 웅웅 거리는 울림은 가까이 닿을 수록 심해졌다. 웅웅... 지지직 치지직...
그랬던 연수 과정에서 팀장에 자원했다. 순전한 이기심으로, 나는 일을 잘 하고 싶은데.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일하기는 싫었다. 그러니 내가 팀장이 된다면 적어도 나보다 열심히 안하는 사람을 위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며, 계속 연수 과정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이기심은 오산이었다. 팀원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으며, 진실된 태도로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오히려 비대면 연수라는 환경을 탓하며 거리를 두고 있던 것은 나였다. 내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단절을 선택하며 선택을 이어나갈 때, 팀원들은 소통을 만들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전자공학과 기계공학, 전자 기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이러한 환경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진심을 내어 주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라는 환경이 우리를 단절시켰다는 것도, 피상적인 분석이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연결점을 찾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건 이래서 이래, 이건 저래서 이래 불만만 내놓으며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지.' 생각하고 멈춰 있는 건, 소통과 관계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평을 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결국 환경에 굴복하고 어쩔 수 없다는 푸념만 내놓은 내 모습도 불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주가 지나고 함께했던 팀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내게 고마웠다고, 팀장이라 수고했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고마운 것은 당신들이며,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던 것은 당신들의 부지런함이었다는 것을. 새로운 2주, 또 다른 연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팀장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이기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손바닥을 내밀어 모니터에 붙여 보았다. 웅웅 거리며 치지직 거리는 감각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가까이 대려고만 해서 그런 것이었다. 닿아 보니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