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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ug 13. 2021

직장인의 기댓값

무엇을 기대하세요.

 "요즘 월급으로 집을 어떻게 사요."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자조적인 말. 어디를 둘러봐도 비관밖에 안 보여서 유튜브를 껐다. 비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황을 바꾸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행동할 에너지까지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존재라서. 비관할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거나, 움직이는 게 낫다고 느끼니까. 물론 이 상태는 수없이 많은 비관 속에서 헤엄치다가 얻은 결론이다. 원래 합격한 사람들만 수기를 쓰지 않는가. 나도 비관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집을 살 계획을 하고 있다. 대단한 월급은 아니지만, 아니 그렇다고 또 대단하게 적은 돈도 아니지만 집을 사기엔 턱없이 모자란 돈임은 분명하다. 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모아도 서울 아파트를 못 사니까. 그래서 대출이 있다. 주담대, 보금자리론 그런 것 말이다.


 할부 인생, 첫 신용카드를 만들고 나서 산 아이폰 12 pro에게 배웠다. 다달이 20만 원이 낼 만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숨만 쉬어도 20만 원이 나간다는 것은 간과했던 것이다. 아 이러다가 카푸어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는 신용카드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체크카드 위주로 살았다. 아 물론 이직을 기념하며 감사한 분들에게 선물을 주느라 첫 달은 신용카드를 써야만 했다. 그럼에도 아직 남은 은혜들이 있고, 이젠 체크카드로 해도 될 수준의 현금흐름을 만들었다.


 현금을 위주로 쓰다 보면, 기댓값을 계산하게 된다. 내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소비해야지 이번 달이 살아질 수 있는지. 사람은 이득보다 손해에 민감하다고 하지 않는가. 신용카드를 쓰면 손해가 덜 보여서 그런지, 월급이 깎이는 느낌이 덜 든다. 체크카드는 매 순간 잔액이 보인다. 확실히 잔고를 털어가는 느낌. 이대로 쓰다가는 X 되겠구나. 내가 느낀 첫 번째 기댓값은 X 됨이었다.


 근데 이 기댓값이 꼭 돈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선배는 어딜 가도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찍혀 있었다. 누굴 만나도, "네 선배가 진짜 에이스야."라는 말이 항상 따라왔다. 솔직히 덕분에 나는 잘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실제는 그 정도는 아닌데. 그리고 난 선배가 아니니까 선배처럼은 할 수 없을 텐데.라고 속으로는 매번 느끼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 또한 나의 기댓값이 될 것 같아서.


 "예측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퇴근길에 동기와 만나 커피를 마시며 얘기했다. 예측이 되는 사람, 기대와 실제가 같은 사람. 그래서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 기대는 자신의 몫이라고 인정하지만, 결국 실망을 하면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게 인간이니까. 아홉 시가 되어가도록 이야기를 계속했는데도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나는 오늘도 어떤 기대를 쌓고, 기대를 주고 말았는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핸드폰에 쌓인 어머니의 카톡을 봤다. 어머니에게 나는 어떤 기댓값일까. 친구에게 나는, 선배에게 나는 또 어떤 기댓값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누군가에겐 친절하고, 누군가에겐 잔인하고, 누군가에겐 따뜻하고, 누군가에겐 차갑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태도의 좌표값을 묶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수학에서는 기댓값이 평균이라는 사실이 참 잔인했다. 고작 평균으로 나를 설명하기엔 너무 부족한 게 많았으니까. 나는 정규분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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