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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ug 14. 2021

쓰고 싶은 건 외로움이겠지

이런 날도 있는 법이지

 달콤한 꿈을 꾸고 싶은 건 아니다. 살아있는 건 현실이니까. 여름에도 굳이 살갗을 갖다대며 붙어있는 사람들 때문이겠거니 하고 집에 들어오지만, 혼자가 된다고 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이것을 타인의 영향이라고 보기엔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다. 필력이 닿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쓰고 싶은 것은 외로움이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닌데, 오히려 말리니까 괜히 해보고 싶은 건가 싶다. 죽고 못사는 연애, 몸에 좋은 약이 쓰다지만 이정도로 쓸 것이면 가끔은 독약인지 의심은 해봐야 한다. 고작 몇 년 살았다고 이제는 씀을 나눠서 슴슴한 맛으로 즐기는 것이 더 낫다고 느낀다. 안정적인 연애, 그 맛은 슴슴한 평양냉면의 맛이 나지 않을까.


 젊은이들을 모아 놓으니 사랑 타령이 주제가가 된다. 가십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근본적인 가치관으로 마무리된다. 이래서 대화가 무섭다. 잠깐 훑어지나간다고 생각한 것들이 얇게 껍질을 저며낸다. 집으러 가는 버스에서 종일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하던데, 음유시인들의 가사에는 통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듣는 것들은 정해져있다. 권정열의 찌질함으로 시작해, 김광진의 아련함으로 끝난다. 둘 다 똑같은 말을 하는데 하나는 찌질하고 하나는 아련하다. 아련하다 못해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이 사람들도 사실은 찌질했겠지? 고전 속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이 얼마나 각색된 것일지 생각해본다. 누구나 지나간 사랑엔 로맨스를 더한다. 그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하지만, 사랑하는 이상 편집할 수 밖에 없다. 깔대기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메가폰인 것처럼.


 대체 어떻게, 그렇게 숭고한 미래를 그려내는 것일까. 얼마 안 남은 동창의 결혼식이 또 나를 울린다. 예전에는 눈시울을 울렸다면 이제는 뎅- 하고 울린다. 막상 물어보면 다들 똑같이 말한다. "그냥 그렇게 됐다." 따지고 보면 내게 중요했던 일들도 그냥 그렇게 된 일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은, 아니 사랑은 "그냥 그렇게 됐다."기엔 다분히 의도적인 시작이 아니었던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요즘 이렇게도 헤메고 있는 것인가 싶다.


 이 글은 외로워지기 위해 쓰는 글이다.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한 탓이다. 분명 사랑할 만한 순간도 덤덤하고 슴슴하게 넘겨버린다. 냉면처럼 후루룩. 그래도 이왕이면 속에 들어갈 것은 따뜻한게 좋다. 그러니 충분히 끓여놓도록 한다. 외로움을 장작삼아, 사랑이 불탈 수 있도록. 대단한 말은 아니지만 대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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