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광래 Aug 15. 2021

퇴근 후 운동에 대하여

직장인의 밀도

 매일은 아니지만 밤마다 공원을 뛴다. 마스크를 사이로 숨을 쉬는 일에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게다가 귀신같이 입추 이후로 선선해진 밤공기 덕분에, 초봄에 뛰던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운동은 매일 나오는 주제다. 어렸을 때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거리를 전전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트레이닝복이 더 잘 어울리는 어른들이 됐다. 물론 운동이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살기 위해 하는 느낌이지만.


 "공부는 삶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운동은 '삶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체력이 좋아지니 지치는 일이 줄었다. 금방이라도 짜증이 나던 상황들이 버틸 만 해졌다. 따지고 보면 그땐 왜 그렇게 예민했나 싶은 수준의 일이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나. 친구를 위해 과자를 한 봉지 사들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그냥 못주고 돌아와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지만), 친구를 위해 노트북을 들고 갔는데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건 나름대로 화가 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무겁게 느껴지던 노트북이 이제는 질소 가득한 감자칩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그게 내 운동의 결과였다.


 하루 종일 짐을 나르더라도 그냥저냥 버틸만하다.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하루 종일 2만보를 걸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대단하게 힘든 일이 아니게 됐다. 상황과 일의 양이 변한 게 아니라, 내 능력이 변한 것이다. 결국 힘듦이란 건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다가왔다. 짜증이 많았던 과거는 일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내가 그 일을 감당할 만큼 강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러니까 누군가에겐 지옥이 누군가에겐 천국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내가 속한 상황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나만 일이 몰리는 것 같고, 나만 안 풀리는 것 같고, 나만 힘든 것 같고... 그런데 지금은 다른가 하면 지금도 여전히 일의 양은 비슷하고, 여전히 비슷한 확률로 실패하고, 여전히 비슷한 양의 어려움이 곁에 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어떤 게 이토록 달라진 것일까.


 예전에는 쉽게 남들을 질책했었다. 공부를 안 한 사람들에게는 깡통이라며 비난을 하기도, 결과는 안 나오더라도 노력이 부족한 건 잘못이라고, 그런 식으로 타인의 행동을 내 입맛대로 재단했었다. 질책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음에도, 그저 스스로의 우월감을 지켜내기 위해 타인을 질책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를 않는다. 실제로 질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고, 누가 뭐라 해도 그럴 것이니까.


 동생에게 하던 잔소리를 그만둔 날부터, 동생이랑 다투는 일이 없어졌다. 잔소리를 해도 변하지 않던 동생의 행동은 그냥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한마디로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다만 내가 너무나도 연약하고 예민해서 눈앞의 작은 거스름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치졸했던 것이다. 운동을 하고, 내 시간에 집중하면서 파이를 넓힌 후에야. 타인을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기다리기 위해서는 내가 여유로워야 했던 일이다.


 운동뿐만이 아니다. 돈도 마찬가지다. 돈 말고도, 관계에 대한 여유로움까지. 자원은 많을수록 좋다. 많은 자원에 집착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지. 많은 자원 그 자체가 문제였던 적은 없다. 시간은 많을수록 좋고, 돈도 많을수록 좋다. 필히 집착을 하게 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 때문에 견제하는 것이지. 돈에 잘못이 어딨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일하는 시간에 아프지 않도록, 그래서 돈을 수월히 벌도록, 그래서 많은 것들을 기다릴 수 있도록. 노트북을 감자칩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쓰고 싶은 건 외로움이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