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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ug 16. 2021

당신의 야망은 안녕하십니까

소고기나사 묵겠지

 이십 대 초반엔 한 가지 목표뿐이었다. 충분한 월급으로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지자. 충분한 월급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포기하는 게 많아졌다. 처음은 결혼이었고, 두 번째는 나의 노후였다. 5년의 시간이 흐르며 부모님 덕분에 그 목표는 쉽게 풍화되었고,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노후를 위해 살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나는 왜 돈을 버는가. 아니 나는 왜 일하는가. 간단한 질문 한 가지에 답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고기를 사주고 싶어." 지난 연인은 내게 행복의 정의를 물었고 나는 저렇게 대답했다. 그녀가 떠난 이후로는 조직의 숨결을 불어넣고 싶어서, 아니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일의 이유를 찾아다녔다. 야망이라는 퍼즐의 빈칸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나 보다. 주기적으로 나의 꿈을 찾았고, 이유를 찾아서 목표로 삼았다.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얼마나 내게 중요한 일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다. 타인을 의식한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남는 것은 있었다. 돈 계산이 빨라졌고, 일머리가 좋아졌다. 몇 개의 포트폴리오가 쌓이고, 디테일보다는 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나만의 장점도 발견하게 됐다. 타인을 생각하며 품은 꿈이지만 결과는 내게 쌓이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변명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잠식되지 않았다는 마지막 발버둥. 그와 동시에, 타인을 핑계로 나의 욕구를 숨겨온 나의 가면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게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구체적인 목표들이 사라지는 타입이었다. 계획을 무용하게 여기게 되고, 그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게 됐다. 'boys be ambitious'라는 문장을 참 좋아했는데. 키팅 선생님에게 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는 야망을 가지기에는 그렇게까지 이루고 싶은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묘하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진중해졌다. 인생 전체의 무게감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는데. 하루하루에는 목숨을 걸어 집중하고 싶다. 친구와 대화할 때는 반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쌓여가는 카톡을 두고서도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는 일이 잦아졌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보다 중요한 미래가 있는지 모르겠기도 하거니와. 눈앞의 사람과 상황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야망이 사라지면 인생이 허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하루하루가 진해져서 침대에 누우면 3초 만에 잠에 든다.


 물론 직장인으로서, 개인으로서 품고 있는 작은 꿈은 있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던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싶다던가. 그렇지만 예전엔 세밀 묘사로 그려냈던 것들이 요새는 인상으로 그려진다. 마른 아크릴 물감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던 것들이, 이제는 수채화로 뭉뚱그려 흐리게 그려내는 일이 잦다. 하고 싶은 것들은 있는데 변주가 너무 넓어서 대충 그런 것이면 된다는 식이다. 대충 그런 미래면 된다. 대충.


 야망가들의 빛나는 눈에 비하면 내 눈은 꽤나 흐리멍덩할지도 모른다. 딱히 되고 싶은 건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지만 이것저것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이뤄낸 것도 없다. 그래도 너무 힘주고 살면 정작 필요할 때 에너지를 못쓴다는 변명을 잘 차려 두었다. 어쩌면 내 야망은 오늘 하루에 있지 않을까?라는 핑계도 재킷 안주머니에 꽁꽁 숨겨 두었다. 누군가의 야망은 무한리필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의 야망은 피자를 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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