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음을 몰랐다, 비싼 음식을 먹어보기 전까지는

컨셉즌, 100일간의 글쓰기 40일 차

by 최광래

"진짜 평양냉면을 먹는 사람들은 식초, 겨자 안넣어요."


살다 보면 이상한 고집이나 원칙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몇년 전 평양냉면(이하 평냉)에 대한 선호가 급부상하면서, 평냉족들 사이에서는 가위질, 겨자, 식초 등 음식에 곁들임이나 손질을 금지하는 원칙이 공공연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레드벨벳의 평양 방문에서 평양냉면에 식초를 넣어 먹으라는 장면이 방송되긴 했지만, 평냉에 대한 애호가들의 분명한 취향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저도 평양냉면 정말 좋아합니다.

나는 음식에 대해 관대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매운 것을 잘 못먹는 것을 제외하면 양식, 한식 등 평범한 음식부터 동남아 음식부터 특수부위까지 호불호가 갈리는 맛에도 민감하지 않다. "뭐 먹을래?"라는 친구들에 질문에도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맛이 다른 것이지 맛이 없는 게 아니다."라는 어떤 식객의 표현이 마음에 든 이후로는 어떤 식당에 가도 맛에 대해서도 별 다른 표현을 하지 않았다. '맛있음'이라는 감각이 허상은 아닐까 하면서.


하지만, 변화는 인턴 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사람은 평생 몇 번 소비력이 크게 변한다고 하는 데, 그 중 한번은 취직이었다. 버는 돈이 많아지니, 선택권이 넓어진 것이다. 사치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궁금했던 고급 음식점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예상 외로 한 끼에 10만원이 넘는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순간의 맛있음을 넘어 좋아하고 싶은 '맛있음'이었다. 살면서 좋아하는 음식점이 없었던 내 입맛의 원인이 고작 돈 때문이었다는 게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분명한 내 입맛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다름이라고 이야기 해온 맛들은 사실 부족한 맛들이었고, 비싼 음식이 무조건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맛의 기준점을 제시해줄 수는 있었다.


그렇게 알게된 나의 입맛은 삼삼하고, 오랜 시간 우려낸 비릿함을 좋아하며 소금보다는 간장으로 간이 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정성이 들어가는 조리 방법 때문에 학교 주변 밥집에서는 비용을 맞추기 힘든 그런 음식들이 내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이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곰탕집이나 라멘집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도 하며, 내가 가진 맛의 세계와 취향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은 부분에서 나의 취향을 무시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의 취향을 발견하지 않으려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정해버리면 새로운 음악을 좋아하지 못할까봐, 좋아하는 책을 정해버리면 그 분야의 책만 읽게 될까봐. 수많은 볼거리와 알거리들을 놓치게 될 까봐,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사람 관계에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거나, 어떤 사람이 좋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놓친 채 그런 사람만 만나게 될 까봐.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만나고 싶고 친해지고 싶던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취향'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밝히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조금은 다르더라도 왜 다른지를 친절하게 밝히고 서로의 취향을 넓힐 수 있는 사람들.


요즘은 내 취향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생각해본다. 가끔은 오버하기도 하지만 아이유의 지난 앨범에 대해 신나게 떠들다 보니 적재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됐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기 때문에 허연 시인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할수록 새로운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분명해 질수록 또 다른 분명함들이 내게 찾아왔다.


메뉴를 고르는 시간 앞에서 여전히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무거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왕이면 시원한 국물?"이라고 뒷말을 붙여 본다. 그래야만 "나는 파스타가 좋은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테니까. 혹시 알아? 정말 맛있는 파스타를 먹게 돼서 다음부터 내가 먼저 파스타를 찾게 될 지도.


오늘의 죽지 않을 이유, 분명한 취향을 찾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