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진, 100일간의 글쓰기 41일 차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주말이면 집이 더럽다고 매일 잔소리를 하셨다. 꿈쩍 않는 어머니를 두고 직접 빗자루와 손걸레를 들고 온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시곤 했다. 쉬고 싶은 주말마다, 기어코 몸을 움직여서 집안 청소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부지런함'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버지가 느낀 '더러움'을 공감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내 키가 아버지만큼 훌쩍 커버린 탓이었다. 가족들의 작은 키로는 닿지 못할 높이에 쌓인 먼지가 아버지에겐 너무나도 명확히 보였던 것이다. 같은 시야를 가지게 되니 보였고 '더럽다'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바쁘더라도 가끔씩은 아버지를 도와 먼지를 털곤 한다.
이처럼 시야에 따라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굳이 물리적인 높이나 위치가 아니어도, 마음에 따라서도 시야가 달라지곤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정신이 없을 땐 내 모습을 체크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거나 입 근처에서 손이 맴돌곤 한다. 회사 동료들도 집중할 때면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들이 있다. 뜯겨나간 손톱을 보고 '내가 손톱을 뜯었구나.' 짐작할 뿐이지 손톱을 뜯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관심사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기도 하다. 음식점에서 모임을 하더라도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맛과 재료가 보일 테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내부의 디자인과 조명에 눈이 갈 것이다. 같이 길거리를 걷더라도 나는 주로 벽과 바닥에 생긴 금을 자주 보는가 하면 누군가는 간판을 본다. 길을 잘 찾는 사람들이 큰 건물을 잘 보고 길치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길의 느낌을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곳에 서있어도 다른 것들을 보곤 한다.
어제는 잘못 주문한 택배를 반품 신청했다. 택배 기사님이 찾아가실 수 있도록, 상품 위에 포스트잇을 붙여 두고 문 앞에 뒀다. 집에 사람이 항상 없기 때문에 그래도 큰 수고 없이 찾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반품할 택배 어디 있어요?"
"에... 문 앞에 없나요?"
문 앞에 없다는 택배기사님의 말씀, 나는 내 기억을 총동원해봤으나 문 앞을 제외하고는 둘 곳이 없었다. '혹시 도난을 당한 건가.' 싶은 마음에 급히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오후에 나올 때까지 문 앞에 있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안도하고 기사님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오후에 다시 오신다는 기사님께 연신 죄송하다며, 통화를 마쳤고 그렇게 나는 밤이 되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반품 상자가 여전히 집 앞에 있었다.
오배송 확인을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한 시간쯤 뒤 기사님께 연락이 왔고 나는 '문 앞에 뒀다.' 기사님은 '문 앞에 없었다.'로 말씨름을 이어갔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 같은 반복되는 말싸움에 화가 났다가도 배드민턴 랠리를 주고받는 것 같아서 피식 웃었다. 어쨌든 오후에 방문하신다는 기사님의 결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씩씩대며 통화를 마치자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이 집에 왔고, 나는 이 상황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형 근데, 기사님들은 못 봤을 거야 아마. 그리고 못 봤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걸...? 택배 일에 필요한 방어기제라고 생각해 나는."
동생은 가끔 이렇게 포용력이 좋다. 자기가 겪지 못한 타인의 시선까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동생에게 있다. 문 밖으로 나가보니 정말 감쪽같이 보이지 않았다. '문 앞으로 오셨어야지.'라는 생각을 할 때쯤 다큐멘터리에서 본 '택배기사님들의 하루'가 생각이 났다. 하루에 많게는 10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하는 일. 한때 월 400만 원을 번다는 기사를 보고 택배일을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상하차 알바를 일주일 정도 해보고 나서 금액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어떤 일도 쉽게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였다.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한 기사님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확인하고 통화를 할 시간은 없었다는 걸. 그런 분들에게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 반품 박스를 확인하게 하는 일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상자는 있었지만 기사님에겐 없었던 게 맞았다. 나는 볼 수 있었지만, 기사님은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고 끌차 소리가 날 때쯤. 부리나케 음료를 챙겨 문을 열었다. "일부러 진상 부리려 한 건 아니다. 근데 못 보실 거라곤 생각 못했다."라고 가볍지만 필요한 말을 전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방어기제를 펼치던 기사님의 입에 살짝 미소가 돌았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었을까. 어쨌든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잘 부탁드린다며 엘리베이터를 보내드렸다. 이런 말싸움조차 얼마나 많은 소모전으로 느껴지실까.
아빠의 청소부터, 택배 기사님과의 말싸움까지. 시선의 차이는 존재의 차이로 이어지곤 했다. 관측과 존재의 의미를 연결지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는 건 누군가에게는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이는 사람이 알려줘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챙겨주는 세상을 바라게 됐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라는 누군가의 명언처럼 모르는 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배우며 자랐고, 키가 커졌다는 이유로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됐다. 동생의 여유로 출발한 경험으로 택배기사님들의 시선을 배웠다. 알게 모르게 여러가지 시선을 주고받으며 오늘을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시선들이 이어진다는 것을 느낄 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시선을 나누고 있는 듯 하다.
오늘의 죽지 않을 이유, 내가 배운 시선들과 내가 가르쳐야 할 시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