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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Sep 14. 2021

회사가 나를 괴롭힐 때

일에 집중한다고 놓치고 있던 것

 언젠가 퇴근하고 온 날, 침대에 누워 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이 있다. 별 다른 이유도 없었고, 그 날은 실수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무시했던 은근한 불편함, 벽, 거리감 같은 것이 쌓여 마른 눈을 부수는 충차가 되었었다. 부서질도록 눈꺼풀을 비빈 후에도 멈추지 않아, 다음 날 찬물로 한 시간을 샤워한 후에야 그나마 덜 부은 상태로 출근할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은 그런 것이다. 누가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히지 않아도, 무언가 크게 실수한 것이 없어도 알 수 없는 괴로움이 차오르는 곳, "월급은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이야."라고 누가 말했다. 월급, 그 대가가 건강과 감정일 줄은 몰랐던 사람들이 있다. 테두리 바깥에도, 내 주변에도, 나의 과거와 미래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던지고 싶다. 괴롭고 힘든 것이 사회 생활이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다고. 대뜸 던지는 위로보다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적어내고 싶어 밤 9시, 노트북을 펼쳤다.


1. 어찌됐던 고통은 나누는 게 낫다.


 아무리 누가 뭐래도 고통은 나누는 게 낫다고 본다. 잠깐은 약골로 비춰지고, 어린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스스로는 편해진다. 관리자들의 몫에는 후배들의 정착과 안정적인 근무 적응이 평가 지표로 잡혀있다. 좋든 싫든 후배가 힘들어하면 상사들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다. 힘듦을 꺼내는 순간은 스스로를 원망하고 싶고, 부족한 자신이 밉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부족할 때가 있고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다. 상사는 그런 당신의 힘듦을 해결하고 들어줄 의무가 있다. 도덕이 아닌 계약으로 존재하는 그런 의무 말이다.


 나는 여전히 예쁨받고 일잘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기 위해 참는 일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참다가 결국 그토록 그려왔던 사회 생활 자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질병은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듯, 마음의 고통도 초기에 잘 터는 것이 중요하다. 후배에게 소주 한 잔을 권하는 것이 꼰대가 된 지금, 상사들에게도 후배를 위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잘 하고 싶은 회사 생활, 오래하고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직무를 이용하자.


2. 자고 나면 까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동기 A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회사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그녀와 친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비결은 그녀의 단순함에 있는 것 같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과 표현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매사에 솔직하고 때로는 과감할 수 있는 단순함. 많이 꼬인 사고를 가진 나로서는 그녀의 단순함이 부러울 때가 많다. 전 날까지 울다가도 다음 날 점심 맛있는 것 먹었다고 바로 행복해지는 그런 모습, 바보같다고 느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누가 바보인지. 꼬인 생각은 결국 내 목을 조르는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명상을 통해 하루를 정리하고 그대로 보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생각만큼 잘 되는 일은 아니다. 여전히 실수나 착오는 다음날, 아니 다음 해가 되도록 기억에 남아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치만 가끔씩 의도대로 보내버린 감정들은 내일의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줬다. 작은 확률이라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만약 당신이 행복을 잘 느끼는, 욕구에 충만한 사람이라면, 당장 떡볶이를 시키고 족발을 시켰으면 좋겠다. 꼬인 생각을 푸느라 내가 선택한 명상은, 식욕이 높지 않아 단순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사람의 궁여지책이었다. 홧김비용도, 지 멋대로인 욜로도 나쁠 게 어디 있을까? 본인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라면 괜찮다고 본다.


3. 동시에 많은 것들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회사 생활과 일상 생활 그리고 자기 계발까지 욕심내며 시간을 보낸 적이 많다. 물리적인 시간은 잘 분배된 것처럼 보였지만, 회사에서 쌓인 피로도를 제대로 풀기도 전에 새로운 과업을 마주하며 나는 스스로를 스트레스의 구렁텅이로 보냈다. 회사와 일상, 그 모두를 완벽하게 보내려는 강박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생각해보면 회사나 일상 중 한가지에 좀 풀어져서 적응할 수 있을 때 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게 맞았던 것 같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회사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느낀다. 하루에 8시간 어쩌면 그 이상, 퍼센트로만 따져봐도 깨어있는 시간 중 50% 이상을 회사에서 보낸다. 준비하고 이동하는 시간까지를 포함하면 60%넘는 시간을 회사와 묶여있는 것이다. 과반이 넘는 시간을 불행하고, 어렵게 보내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가장 불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회사의 업무를 이해하고, 적응할 여유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넓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나 퇴사를 꿈꾸고, 월요병을 겪는다지만. 회사로 인해 괴로움에 잠을 설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어렵게 입사한 만큼, 노력도 해봤을 테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잊으며 반성하고 나아가려 공부도, 체력도 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닌 경우들이 있다. 정말 사람이 안맞을 수도 있고, 어쩌면 처음부터 뒤틀려버린 조각이라 이제와서 고치기가 너무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 때는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퇴사를 종용하는 말이 아니다. 작게는 팀을 떠날 수도 있다. 팀 밖에는 수많은 팀들이 있다. 조금 더 크기를 키워보면 부서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다. 내 친구는 하루종일 스트레스 받으며, 매일을 갈등하던 팀에서 옆 팀으로 옮겼을 뿐인데, 매일을 행복하게 웃으며 지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닌 것들도 있다. 팀을 벗어나고 부서를 벗어나고, 본부를 벗어날 수도 있다. 퇴사는 그 뒤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까운 인사 부서에 요청하거나, 노동조합을 찾으면 좋다. 정 어렵다면 선배나 동기를 찾아도 좋다. 그들이 손을 내밀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아름다운 부분도 많다. 좁은 곳에서 나의 전부를 부정하며 갇혀있었던 사람으로서, 세상이 내미는 손길이 생각보다 다양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오늘도 괴로움에 사무치는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나의 용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힘들다고 말하고, 도망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이야기 하면 많은 것들이 바뀐다고 믿는다. 세상은 너무나도 넓으니까. 지금 있는 곳이 당신의 전부는 아니다. 절대 구멍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바란다.


 변화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 나처럼 모자란 인간도 했으니 당신은 무조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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