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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Sep 12. 2021

진심이지 않고 싶어

진심일수록 못하는 사람

 무언가에 진심이 될수록 어려웠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고, 나도 모르게 힘을 주기 시작하면 대부분 어그러졌다. 광고가 좋아서 공모전에 매달리다가 탈모가 온 적도 있다. 이제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지만 그때 머리를 감을 때마다 막히는 수챗구멍을 보며 눈물을 가리기 위해 샤워기를 더 강하게 튼 날들이 많다. 그저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심을 다하면 몸은 아파왔고, 건강을 비용으로 지불해도 성과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마치 어떤 나라의 화폐가치처럼,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치솟는 인플레이션 속에서 휴지조각처럼 느껴졌다.


 관계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친한 동생은 나의 코어 욕구가 '인정'이라고 말했다. 인정받고 싶어 사는 사람, 인정받으면 다 되는 사람. 나는 어떤 의미든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먼저인지,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마음의 교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등가교환을 바랐다. 아니 모자란 가치더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을 받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할수록,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가 나를 좋아했으면 할수록 나는 그 이상을 좋아했다.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가치를 지불했다.


 언젠가 게임을 하다가 재료 아이템 시세가 올라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재료 수급에 급한 자본가들이 재료를 비싸게 매입하기 시작했고, 몇 백 원 수준이던 재료들은 순식간에 몇 천 원 수준으로 올라버렸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만 원에 수십 개를 살 수 있던 물건을 두어 개 얻기도 어려웠다. 비싸게 사는 사람들이 계속되는 한, 시세는 내려가지 않았고 내가 게임을 접을 때쯤 되어서야 시세는 다시 돌아왔다. 비싸게 사는 사람들, 어쩌면 현실에서 나는 마음을, 성과를 비싸게 주고 사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가치 이상을 불러버리는 사람,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지르기만 하는 사람, 카푸어가 있다면 나는 인정 푸어, 인정받기 위해 과한 비용을 지불하고 마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심이 아닌 것들은 정말 쉬웠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들지 않으니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나름대로 성적, 일, 관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관계에 있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대충 맞춰줬더니 그 친구는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소문내 주었고, 귀찮아서 효율적으로만 정리했던 일들이 손이 빠르고 머리가 좋다는 칭찬으로 돌아왔다. 적당히, 그냥 보통의 마음으로 행한 일들은 항상 크게 돌아왔다. 진심을 다하면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들인데, 적당히, 대충 하면 할수록 잘됐다.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된 경험은 운조차도 부정하게 만든다. 어쩌다 생긴 경우는 결측치로 여길 수 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간 패턴이라고 인식한다. 안타깝게도 내 삶은 데이터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어서, 확증 편향도 막을 수 없었다. 몇 번 반복되는 일은 더욱더 그런 상황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진심이 아니었음에도 잘 된 일들, 진심이 아니어서 잘 된 관계들을 더욱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진심이 아니라서 잘 되어가고 있다. 진심이 아니라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진심이 아니라서, 여유롭게 대하고 있다. 진심이 아니라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말 슬프게도 진심이 아니라서 잘 되어버린 탓에 진심을 다하거나 진심을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에 있어서 그다지 진심이 아니다, 관계에 있어서도 그다지 진심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정말 진심이었다가 잘못될까 봐 진심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진심인 것을 인정했다가 또 고장 나 버릴까 봐. 또 수틀려 버릴까 봐. 진심으로 하면 다 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건 내 바람이다. 진심이 통했으면 좋겠지만, 무엇이 이뤄지고 마는 데에는 내 진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의 방정식에 진심이라는 변수는 소용없다. 계산식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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