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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pr 13. 2022

내겐 허먼 밀러가 없을지라도

어느날,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얼마 전, S사의 창립 기념 복지 혜택이 커뮤니티에 공유되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허먼 밀러, 의자계의 명품이라 불리며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의자로 교체한다는 소식에 별을 다섯개나 그린 이 사람의 미소가 그대로 보이는 글이었다. 허먼 밀러, 나는 나의 작디 작은 무명 의자를 보며 잠깐 아픈 허리를 쓰다듬어봤다.


좋은 회사와 좋은 일에 대해서 고민했다. 많은 조직을 오가기도, 어렵사리 뚫어낸 공채 한 자리를 집어던지기도, 어딘가 있을 허상같은 완벽한 회사에 대해 고민했다. 이런 고민의 시간들이 의미있었는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시간동안 충분히 헤메이고 고통받고 또 기쁘고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허먼밀러만큼은 아닐지라도,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는 모 회사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던 시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구글이라서, 애플이라서 행복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로 회사 생활의 페이지를 채워야 할까.


두 명 중 한 명, 그 해의 광고회사 전환율은 잔인했다. 나는 그 과정이 두려워서 지원하지 않았지만, S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장난스레 우리를 불러 밥을 사줄테니 과제를 봐주지 않겠냐고 물었고, 나는 "이러면 안되는 거 아냐~?"라며 그녀의 장난에 박자를 맞췄다. 그저 밥 한번 먹자는 핑계겠거니, 일단 합격이라는 좋은 소식에 기쁨을 나누는 자리겠거니 하며.


마주한 S의 얼굴은 피곤에 지친 다크서클만큼이나 어두움이 가득했다. 며칠 째 잠을 못자고 있다며, 한 오피스텔로 우리를 안내한 그녀는 장시간에 걸쳐 준비한 과제를 펼쳐놓았다. 그때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캐치한 우리는 부리나케 파트를 나눠 그녀를 도왔고, 우리는 장장 10시간을 농담 없이 보내야만 했다. 버티다 버티다, 그마저 버티지 못해 내가 잠을 청할 때에도 그녀가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두 명 중 한 명이라는 잔인한 확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시지프스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한명의 주인공이 됐다. '한 명'이라는 같은 이름 속에서도 누군가는 빌런처럼 사라져갔다. 아니 빌런조차 되지 못하는 인물 K 정도. 그토록 어렵게 들어간 회사 생활이라 그런지 몰라도, S는 내게 취업턱을 사며 말했다. "그래도 좋아. 그래도 정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


인터넷에서 허먼 밀러를 찾아보았다. 제일 싼 제품이 이백 만원 대, '자리라는 건 저렇게 비싼 것이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그 자리에 앉아있기 위해 쓴 비용을 생각하면, 허먼 밀러도 비할 바가 못되는 것만 같았다.


경제학에서는 기펜제라는 용어를 쓴다. 가격과 수요가 함께 올라가는 특이한 제품, 허먼 밀러처럼. 누군가가 앉은 그 자리도 기펜제와 닮아 있었다. 지나간 시간과 비용을 쿠션삼아 가격을 높이는. 자리의 푹신함은 그간 겪은 어려움을 가치로 치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홍수처럼 머리를 가득 채웠을 때, 비로소 나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듣고 싶어 귀를 긁어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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