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힘을 줘 봤자...
"직장에 힘을 줘 봤자. 똥만 나오지."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일이 안 풀릴 때면 유난히 힘을 주게 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만들었다기보단 싸는 것이었을까.
첫 업무 회의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라는 팀장님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자리에 앉았다. 친근하고 조금은 조용한 팀원들의 발표가 시작되었고, 나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메트로놈처럼. 끄덕끄덕.
"카피가 너무 좋은데요?"
"그래도 직접 만들 생각을 하니까 조금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이제는 광래님이 카피라이터로 오신 거니까. 충분히 해 주실 거예요."
가벼웠던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래 스타트업은 이런 곳이었지. 2일 차면 충분히 업무를 해야 하는, 그리고 내 업무에는 내가 총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여차하면 사수도 없는 곳이지만 그나마 팀장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돌아왔다. 가만히 앉아서 스토리를 구성하려고 했다. 미친, 전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한동안 단순한 처리성 업무들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유튜브를 켜서 좋은 콘텐츠를 머리에 집어넣었다.
쑤셔 넣는다고 되는 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시간이 지나도 나는 아무것도 머리에 남기지 못했다. 텅 빈 도화지 같은 키노트를 펴고, 막막한 백지를 사막처럼 헤매는 마우스 꼴이 사나웠다. 안 그래도 익숙지 않은 맥북인데, 안을 채울 콘텐츠조차 빈약했다.
막막한 마음을 가지고 펜을 쥐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동료에게 물어도, 팀장님에게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버리듯 보내고 나서 집에서 하염없이 한숨만 쉬었다. 이러려고 이직한 게 아닌데, 이러려고 일 하는 게 아닌데.
퇴근길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항상 그렇듯 어렵다는 말. 습관처럼 힘을 빼고 즐기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잠깐만, 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힘을 빼는 일은 나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면서 너무 쉽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문장을 고쳐 담았다.
"힘 빼기 어렵더라. 같이 빼보자."
힘을 빼면 잘 된다. 즐기면 된다라는 말 같은 것을 할 자격도 없다. 그렇지만, 적당히 힘주는 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방법은 힘이 아니어도 많으니까. 힘이 없으면 기술이 있으면 되듯, 방법에 따라 다른 힘이 있으니까. 그저 힘을 많이 주는 건 능사가 아니니까.
며칠 전 PT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조건 힘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힘줘봤자 회원님 손에 땀만 나는 거예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만 같았던 이전 회사에서도 선배들은 적당한 힘을 강조했다. 그 빡세다는 영업 조직도 그랬다는 말이다. 그래 우리는 일 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지, 힘쓰기 위해 고용된 건 아니다. 적당한 힘, 그 지점을 찾아나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