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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Apr 22. 2022

지방간 진단을 받은 날

오피셜 금주령

 "지방간입니다. 심해요. 약 드시고 향체 검사도 해봐야 해요. 간염이나 간암으로 발전할 매우 높습니다."


 평소 잠재력 하나로 먹고 살아온 나라서 그런지, 질병도 잠재력만 가득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지방 부피가 5% 이상이면, 지방간으로 진단한다고 하는데, 나는 15%를 넘는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중성지방 정상범위 200에 480, 단위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충 2배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항체도 없고, 평소에 많이 피곤하지 않으세요? 간기능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떨어지거든요."

 "아, 그냥 보통 사람들도 이정도 피곤하진 않나요?"

 "아닐 거예요. 그정도로 피로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거예요."


 위에서 1등을 못할 거면, 아래서 1등이라도 해야 한다고 20대(만 29세)의 간기능이 아니라고 했다. 피로는 간때문이야라는 차두리 선수의 말처럼, 내 피로는 수면 부족도, 스트레스도 아닌 간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난다. 유난히 일어나기 힘들던 겨울날, 아침 등교를 거부하고자 자연스레 병원으로 향했다. 그냥 진단서만 끊을 목적으로. 증상을 듣더니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권했고, 엄마 손에 이끌려 진행한 초음파 검사에서 지방간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피로의 역사는.


 조금은 억울한 면이 있다. 지방간의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주로 음주나 비만이 나오는데. 운동을 엄청 꾸준히 하진 않지만, 비만이라기엔 식습관도 좋은 편이고, 술은 정말 안마시다 못해 못마시고 있는데. 이런 내가 지방간이라니, 게다가 초기도 아니고 위험군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웠다.


 그동안 뺨을 치며 기상할 때에도, 아침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힘들어도, 정신력을 탓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웠을 때에도. 사실은 피로했던 거라니. 체력이 약하고 골골댄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으로만 살았었는데. 그게 고작 몇 키로도 안되는 간때문이었다니.


 "지금 보니까, 간염 항체도 없는 것 같은데. 예방주사를 맞으시는 게 좋겠어요. 어떻게 하실래요?"

 "네 그냥 다 맞을게요."


 홧김에 10만원을 예방접종에 썼다. 양 팔에 하나씩, 덕분에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정신이 몽롱한 채로 의자에 거의 누워 있다. 개같은거, 술도 안마시고 운동도 나름 꾸준히 하는데. 열받네. 내 피로가 엄살이 아니라, 진짜 심한 피로였다니. 세상이 가스라이팅이라도 한 기분이다. "남들도 그정도는 피곤해 임마~."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향했다. 몇 만원씩 하는 우루사를 보험 처리로 구매하니 한달에 1만원 돈이 안된다. 간이 약하니, 보조제도 보험 처리가 되는구나. 아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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