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광래 Jul 15. 2022

때 늦은 나의 격리

격리에 관하여

 코로나는 생각보다 아팠다. 움직일 때마다 따갑게 저려오는 등근육부터 기침으로 인한 흉통까지. 두근대는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고 그나마 적게 주어진 업무를 살피고 있으면, 하루는 쉽게 흘러가버렸다.


 격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밀접 접촉자에 대한 격리조차 활발하게 이뤄지던 코로나 초반, 나는 잦은 미팅과 외근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코 쑤심과 격리를 병행해야 했다. 하지만, 그땐 가족이 있었다. 문조차 열 수 없게 철저히 거리를 두었지만, 그래도 끼니 때가 되면 식사를 갖다주었고, 귀를 기울이면 TV 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불완전한 독립이지만,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는 접촉자에 대한 격리는 없어진 지 오래라, 이대로 종식과 함께 나에게 격리 생활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래 유행에 늦는 편인 나는 이번에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노래부터 패션까지 항상 유행에는 늦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불완전한 독립도 완전한 격리에는 충분했다.


 격리는 생각보다 불편했다. 내가 집에서 생활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세 끼를 회사에서 해결하고, 야근과 약속으로 인해 잠만 자는 시간이 가득한 집에서, 나는 이토록 긴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밥은 쌓여있던 닭가슴살이었고, 커피는 배달로 세 잔을 시켜, 얼음이 다 녹은 두 잔을 마셔야만 했다. 갖춰지지 않은 격리는 정말 분리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꽤 늦은 입사는 부끄러웠다. 따지고 보면 평균 나이였지만, 마구잡이로 신입처럼 들떠있을 수만은 없었다. 모임에서도 중간만, 분위기를 맞출 정도로만 호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열정이 넘치는 순간이 다가올 때면 '워 워' 한 마리의 마소를 달래듯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우연한 계기로 맥주  잔을 나눈 새벽, 동료 A와의 시간도 비밀로 봉해두었다. 왠지 하지 말아야  것을  느낌처럼, 학창시절 몰래 집어  연초  대처럼,  아니면 잠든 연인의 카톡 내역을  것마냥. 적당히가 안돼 그만둔 지난 조직에 대한 의리 때문일까. 새로운 집단에서는 적당히를 주문처럼 외치면서 살았다.


 적당히를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도 관계도.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거나, 전혀 괜찮은 척, 다 이해한다는 척 도망치는 건 꽤 괜찮은 임시방편이었다. 그냥 집에 와서 느껴지는 현타만 살짝 견디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짓도 매일은 하기 어렵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끼는 요즘이었다.




 사실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잠깐이라도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일하는 시간에 상투적으로 묻는 안부마저 그렇게 그리웠다. 교류한다는 것, 그토록 불안한 것을 그렇게도 갈망하고 있었다. 멍청한 나는 기꺼이 격리되어봐야만 겨우 아는 것이었다.


 격리 3일 차,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집 앞에 장을 봐 두고 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집 앞에 몇 가지의 간편식과 유제품 그리고 간식거리까지. 쌓여있는 음식을 보며, 오 분 정도 멍하니 있었다.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은 이야기라 아직도 감정선이 잘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냥 감동하기에는 미안한, 그렇다고 미안하기에는 주제넘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는 감사함만 남기려 한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여백이 부족하여 적지 않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