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슬로건이 탄생했다

by 최광래

이번 주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가게 컨셉을 정하고, 이름을 정하는 일을 마쳤다.

아내와 나는 언젠가 태어날 우리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의 묶음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다가, 흔한 이름으로 타인과 결속되기보다는 독특한 이름으로 고유성을 쉽게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특히 어감을 중시했는데, 내 성씨가 꽤 강한 탓인지. 어떤 이름을 붙여도 어감이 뚝 끊어지거나 강하게 쳐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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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바의 이름을 짓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결혼 전부터 우리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달랐다고 느꼈었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아내도 나도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퇴근 후에 사람들이 쉬러 올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때이른 만족감이 먼저 차올랐다. 나는 찰나의 깜빡임 안에 벌써 가게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아내를 그려냈다. 감았다 뜬 현실 속에 아내를 보며 생각했다. 아내와 나의 공간, 우리 부부를 닮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미래를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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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준비하며 정말 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보았다.

인테리어를 위해 비슷한 컨셉의 공간들을 검색해보고, 디자인을 살펴보고

요소들을 체크하며 어떤 소품과 메뉴를 써야 할지 고민했다.

레퍼런스 작업에 능숙한 아내 덕분에 많은 자료들을 빠른 시간 안에 찾을 수 있었다.

아내가 공간을 기획하며 진땀을 흘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즐거워보인다.

장모님은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보며 '달란트'라는 표현을 했다.

신이 아내에게 주신 것이 있다면 공간적 감각일까?

나는 아내에게 신이 주신 달란트는, 이렇게 즐거워 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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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투고 말았다.

사업을 계획한 이후로 아내와 주고받는 대화는 항상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 입장 모두 피곤하고 힘들텐데

우리는 함께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설렘에 버거움을 잊은 채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약간의 기억 차이로 언성을 높이게 됐다.

짧은 다툼이었지만, 충분히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고작 자존심은 아내의 소중함에 비할 바 못된다는 것을.

아내도 그럴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조금 더 아내에게 조심하려 한다.

나를 믿어주고, 내가 믿는 사람과 다툼보다는 사랑으로 함께 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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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사업 소식을 알렸다.

동네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들(형들이지만...)

그들이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사업 이야기를 하는 아내의 모습이 역시나 빛나보였다.

그리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그들의 모습도 빛나보였다.

나는 창업을 준비하면서, 내 생에 가장 자주 빛나는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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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장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가 지향하는 공간의 특성 때문인지, 사장님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많았다.

각종 인터뷰 자료부터, 나처럼 글을 남기는 사장님들까지. 그들의 생각과 판단을 읽을 때마다

놀랄 정도로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느꼈다. 초보 사장도 아닌 예비 사장이 할 소리는 아니겠지만...

몇몇 가게들은 최근에 정리한 듯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타겟하기엔 시장이 작았을지도, 부담스러운 월세에 공간 운영이 어려웠을지도...

나 혼자 서사를 붙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았다.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커피색 앞치마를 두르고, 검정색 셔츠를 두른. 아냐 셔츠는 흰색일거야.

작업하기에 셔츠는 너무 불편하니 피케티는 아닐까.

약간은 찡그린 눈썹은 칵테일은 만들 때 나는 소음을 줄이고 싶어서 신경쓰는 것은 아닐까?

손님이 없는 오늘, 매출은 걱정이지만 공간을 혼자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을 즐기고 있진 않았을까?

나는 궁금해진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을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떤 맘으로 그만두게 되었는지.

나는 그들의 그리움을 담아 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는 그 마음을 안다고, 우리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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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공간을 사랑하는 아내와

책과 커피를 사랑하는 남편의 공간

우리의 작고 소중한 슬로건이 탄생했다.

우리가 함께 만든 것들이 하나하나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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