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바 북술북술 이야기
"여보세요."
더부룩한 체기를 숨기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 B의 전화, 컨디션이 안좋았지만 짧게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 잘 지내고? 책에 싸인 받으러 가도 되냐?"
이번에 책을 내게 된 것에 대해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사실 이 친구와는 오랜 추억이 있는 친구입니다.
몇년 전 둘 다 대학생이던 시절, 마케터를 꿈꾸며 공모전을 같이 했었는데요. 잡히지 않는 컨셉을 가지고 한시간씩 말씨름을 하기도, 제출을 남기고 3주간 카페에서 출퇴근을 하며, 밤낮없는 인턴 생활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공모전을 먼저 시작하고, 알려줬던 건 저였지만 누구보다 실행력과 완성도가 좋은 이 친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수상 실적을 보유한 사람이 되었고, 저명한 국제 광고제에서도 수상하는 성과를 내던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요.
그 뒤로는 갑자기 홀연히 글을 쓴다는 제 앞에 나타나, 자기도 글을 써보겠다더니 저보다 2년 먼저 책을 출판하기도, 갑자기 인스타툰을 그려보겠다더니 팔로워 몇 천명을 만들어내기도, 뜬금없이 미라클 모닝을 하기도... 하여튼 무언가 제가 자극을 주었던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결국 성과를 만들어내는 친구였습니다.
홀연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찾아 비틀거리는 모습이 조금은 보기 힘들어서 서로 거리를 두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책 출판을 이유로 전화를 받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나 사실은 바를 개업해볼까 하는데. 마침 너가 또 북바를 열었더라고."
정말 신기하죠? 이번에도 제가 바를 열었을 때, 이 친구가 바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어떤 분들은 따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반복된 시간 속에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받은 것이고, 경쟁이 아니라 무언가 자기만의 것을 찾고 싶어한다는 것을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가게로 와 B에게 술 한잔을 내어 주었습니다..
시시콜콜한 근황 이야기부터, 가게는 어떻게 운영하게 되었는지. 결혼은, 사업은,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직을 한 뒤로, 평일은 아내가 주로 운영하기에, 가게에 나올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가게에서 내리 5시간을 즐겁게 이야기 하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언젠가 B의 집에서 술자리를 가질 때가 기억에 납니다.
"이 술이 말이야, 고흐가 마시고 귀를 잘랐다는 그 술이야. 압생트."
압생트는 50도가 넘는 독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싼 고급 술이 아닙니다. 어쩌면 단지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엔 너무 독해서, 입 안에 털어넣는 순간부터 고통스럽기 시작하죠. 고흐는 살아 생전에 돈이 없어 압생트를 마셨습니다. 그 시절의 저와 친구도 압생트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하진 않았습니다.
최근 바를 개업하고서, 내가 자격이 있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회사를 다니기도 하거니와, 술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전권을 아내가 가지는 것이 맞다고, 나는 도울 뿐이라며 가게와 나의 거리를 두곤 했었는데요.
최근 들어 그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운영은 아내가 하는 것이 맞고, 실질적인 대표는 아내가 맞지만. 저도 블로그를 하고 인스타를 하면서, 사장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감사하게도 손님들이 전해오는 '글 좋다'는 한마디를 건네 주실 때가 있는데, 그 모습 속에서 저는 가게 사장이지, 한명의 작가로만 평가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사원으로도 성공하고 싶고, 작가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가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진 않더라도 가게를 더 잘되게 하고, 가게에서 더 좋은 경험을 드릴 수 있게 하려면, 가게를 운영하는 내가 진심이어야 하진 않을까 생각합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30대 총각은 제게 그런 말을 해주기 위해 왔더라구요.
아내와 함께 돌아가는 길, 시시콜콜한 얘기로 가득 채우며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다투는 이유는, 내가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게에 집중하면 피곤한 이유는, 내가 가게를 진정으로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는, 내가 이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애정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적절히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적당한 애정으로도 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감동하고, 좋아해줄 수 있는 이유는
진심으로 가게를 사랑하고, 더 좋은 경험을 드리고 싶은 진심을 가진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균형 속에서, 애 썼을 아내를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자신의 그림을 사랑하면, 초상화를 그리며 귀를 잘랐을까요.
적어도 글을 미루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