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목에게 보내는 칭찬

유병욱, 평소의 발견을 읽고

by 최광래
246966948(1).jpg 카피라이터 유병욱의 평소의 발견
"개미 지나간다. 발 조심해."

나는 어려서부터 땅을 보고 걷는 습관이 있다. 개미를 밟지 않기 위해서이다. 꽤나 따뜻해 보이는 습관이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죽거나 다치게 하는 감각이 싫었다. 그게 동물이나 식물이 되더라도.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할 수 있다면 최대한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기의 맛을 즐기곤 있지만, 먹는 일이 아니라면 최대한 무언가를 괴롭히진 말아보자고 다짐을 한다. 얘기가 좀 돌았지만, 개미를 보고 다니는 습관은 내게 두 가지를 남겼다. 하나는 거북목, 또 다른 하나는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잘 피하는 능력이었다. 애견인들의 비양심이나, 누군가의 과음의 흔적 등, 밟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잘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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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장애를 안고 살던 어린 시절 덕분에 관찰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건축물들이 자연의 형태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은 것이 그 증명이다. 상상해본다. 아마 가우디도 거북목이었을까. 길가에 있는 토사물이나 개미를 밟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가우디의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직접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있었다.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오만이겠지만 아마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면 같이 개미를 피하고 낙엽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그런 습관들이 빛난 순간은 백일장이었다. 몇 년 전 책상을 정리하다 어릴 적 쌓아둔 상장을 확인했다. 개근상 및 모범상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자리에는 백일장에서 받은 수많은 상장이 있었다. 대학 시절 공모전에서 받은 상이 제일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잊고 있던 수상의 기억들이 초등학교에 머물러 있었다. 상금으로 학원비를 내기도 했다니 꽤 재능도 있었나 보다.


하지만, 그때의 작품들이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어머니께 물어봐도 잘 기억하지는 못하셨다. 어떤 기억이었을까. 유치원 때 자동차 손잡이 모양만 보고서도 차종을 맞추곤 했다는데. 그때와 같은 서번트 증후군의 일종이었을까. 다만 자연에 대한 시를 써서 상을 받았다는 어머니의 증언이 유일한 힌트였다. 눈꽃과 모래에 대한 시를 자주 썼다는데. 어른의 입맛에 맞지는 않았나 보다. 하긴 대상은 아니고 입상에서 동상 사이의 상장이 많았으니까. 아마 기술적으로 좋은 글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은 그때의 기억들이 돌아왔으면 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기술에 집착하게 되는데 기술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학습을 소홀히 하지는 않지만, 솔직하고 진실된 그런 글들을 쓰고 싶은 것이다. 대체 눈꽃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었을까. 모래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개미떼일까.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었을까. 구글링을 해봐도 찾을 수는 없었다. '평소에 잘 기억해둘 걸.' 그런 아쉬움이 평소의 발견을 서가에서 집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팔 할은 주변인의 추천이었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서 한 말은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의 불씨가 되었다. 잠깐 피어났다 졌을 불씨였어도,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고 글을 쓰고 있다. 성인이 되고 운동을 통해 거북목의 흔적을 많이 지웠지만,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땅을 보는 내 습관과 함께.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평소는 모래와 눈꽃이었다. 그 이후로는 개미였을 것이며, 지금은 도시와 호수를 걷는 하루가 내 평소가 되었다. 나의 평소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평소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던 과거가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해 감춰야만 했던 과거가 사실은 가장 찬란한 이야기의 소재 이진 않을까.


다음 주부터 나는 또 다른 평소를 만들 예정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뻤던 사람들과 그림들처럼, 평소를 사랑으로 들여다보고 발견해줘야지. 조금은 거북목이 될지 모르지만, 그 기울기를 자랑스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