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게 제일 좋아

하라다 마리루, 니체가 교토에 와서 17살 나에게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by 최광래
220444986.jpg 하라다 마리루의 니체가 교토에 와서 17살 나에게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생각이 참 좋네요. 똑똑하고 솔직하네."

한 마디 칭찬이면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교수님이 주신 칭찬은 사람에게 얼마나 벅찼던 것일까. '똑똑하다.'는 말은 인서울 끄트머리를 겨우 들어간 내게, 몇 년을 공부했지만 끝내 수리 1등급을 맞지 못했던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단순히 좋은 말이라서 좋은 게 아닌, 무엇보다 얻고 싶었던 가치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느낌이 좋았다. 매일 타인의 평가에 냉철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고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이었지. 그렇게 나는 똑똑한 사람을 지향하고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까지도 똑똑한 사람을 보면 설렌다. 지금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상형이 있어 연애 감정까지 이어지는 건 어렵지만, 어쨌든 똑똑한 사람은 일단 좋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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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예전 애인의 추천이었다. 중학교까지 수재 소리를 들으며 공부에 집중했더니 오히려 공부가 싫어져 버린 그런 케이스의 사람. 똑똑하지만 스스로 공부하지 않기를 택한 사람, 그렇지만 결국 또 공부를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 역사를 전공하고 사랑했던 그녀는 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세상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과 함께 성장했다고 생각해. 나는 기술이 역사를 이끈 게 아니라 생각이 역사를 이끌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녀는 매일 내게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과학과 기술을 예찬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오빠한테 딱 어울리는 책이 있어. 쉬운 책인데, 쉬워서 어울리는 게 아니라 친절해서 어울릴 거야." 그녀가 보내 준 링크에는 라노벨(라이트노벨 : 일본에서 유행하는 책의 종류이다. 소설 중 판타지와 소위 말하는 오타쿠 문화를 반영하는 소설. 비하의 의도는 없으나, 문학가들 사이에서는 비판받는 듯하다.)스러운 이름의 책이 하나 있었다. '니체가 도쿄에 와서 17살 나에게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참 재밌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헤어짐을 생각했다. 자신이 추천해 준 책이 헤어짐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화가 날까 싶으면서도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 시작점이 되어준 책이라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똑똑한 사람은 좋지만, 똑똑함만으로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칭찬에 기분 좋아하고 동기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일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책임감을 지는 일이 즐겁긴 하지만, 책임감만으로 일을 지속하지는 않는다. 어렴풋이 이해했던 그때 책 속의 이야기가 요즘은 현실이 되어 나를 해방시킨다.


'만약 그때 우리가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도,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하면서도,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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