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없는 주인공을 위하여

정세랑, 피프티 피플을 읽고

by 최광래
155625371bd54b8910452e90dc345717-10.png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내가 작가라면, 이런 이야기는 쓰지 않겠어."

비극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자주 하던 이야기였다. 어떤 글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에도 비극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삶은 고통이라서 오락에서는 행복만 얻고 싶다던 어머니의 영향인 것일까. 나는 비극을 싫어했고, 설사 죽음이 있더라도 그 희생이 길이 기억되는 영웅담이 좋았다. 그래서 위인전을 좋아했고, 유명하거나 화려하거나 똑똑한 주인공들의 서사에 감동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있다면, 저래야만 한다고. 위인을 좋아하면서 위인이 될 수 없는 자신을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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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나의 마음은 천재들에게 향했다. 동아리를 하면서도 나는 천재들(내 기준의 천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그들과 친해지려 했다. 나보다 나은 사람, 이 세상을 주인공으로 살 만큼의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 내면에는 질투가 섞여있었지만, 나는 주인공이 될 사람들에게 교훈과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주인공은 못되더라도 그 옆에 있는 조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마음이었다. 마치 프로도의 곁을 지키는 샘 처럼.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깊이 친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사람.


특히 나는 디자이너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내가 아는 세계에서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똑똑했다. 디자인과라고 하면 일종의 선입견으로 그들의 '천재성'을 칭송했다. 그 첫 케이스는 다름 아닌 내 친구 보성이었다. 나는 보성이와 의도적으로 친해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보성이는 사람들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누군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안 지 며칠도 안된 날, 뜬금없이 강남에서 쉑쉑을 먹을 사람을 구한다는 보성이의 말에 나는 움직였고 공교롭게 그 자리에는 나와 보성이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보성이의 천재성을 알게 된 것은 보성이가 한 기획서를 피드백하는 시기였다. 다들 논리와 시장 상황에 맞춰 전략을 짜는 데 급급할 때, 보성이는 재밌을 것 같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아이디어를 만들어왔다. 타당성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 결과물 자체로 설명이 가능한 그런 것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보게 되는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보성이의 악사를 자처했다. 전장에서 무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악사처럼, 나는 보성이가 만들어 낸 직관에 논리와 자료를 더하고, 그가 지칠 땐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렇게 내가 꽤 괜찮은 살리에르로 남을 수 있길 바라면서.


다음은 동아리 후배였던 도현이와 서율이었다. 둘에게 접근한 계기는 더욱 계산적이었다. 엄청나게 감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 공교롭게도 둘은 보성이의 같은 과 후배였다. 교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천재 디자이너이자 근성도 있는 도현이와 이미 광고 회사에서 아트 디렉터와 AE 직무를 수행해 본 경험이 있는 서율이는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 둘의 능력과 재능을 이용하며, 두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 속 나의 파이를 넓히고자 했다. 능력도 재능도 없지만, 주인공들과 친해서 자꾸 나오는 감초 같은 역할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다행히 나의 동기부여 능력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져서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결과물들을 함께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감초가 될 수 없었다. 친구들의 이야기에는 내가 실릴 여백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의지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커도 몇 글자, 그들의 인생에서 나 또한 잠시 머물러 가는 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정량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쉽게 표현하면 그 친구들의 SNS 피드에서 나를 찾아보는 일은 어려웠다. 피드에 태그 되지 않아서 슬펐던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서 아픈 것이었다. 각자의 삶에서 타인은 결코 비중 있게 등장할 수 없다는 것. 마치 영화 배리드(관 속에 갇힌 주인공의 탈출기를 다룬 영화이다.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의 얼굴과 어두운 화면만 나온다.)처럼 타인이 감히 닿을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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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나는 글쓰기에 관심을 뒀다. 나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조연도 될 수 없으면, 내가 그런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고 블로그는 그런 내 이야기를 담기에 가장 만만한 공간이었다. 정세랑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은 그렇게 1년쯤이 지난 일이다. 친절한 이웃님의 댓글로 처음 알게 됐다. 질림에 관한 문장이었는데, 참 유려하고도 마음에 닿는 표현이었다. 게다가 평소 이웃님의 글솜씨와 생각을 보며 감탄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족적을 따라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 사려던 책은 피프티 피플이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피프티 피플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이 작품이 정세랑 작가님의 등단작이기 때문이었을까? 원래 추천받은 책의 재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쓰고 싶은 소설과 비슷한 구성을 가졌기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이유로 피프티 피플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있었다. 지현, 홍우섭, 오정빈, 임대열, 브리타 훈겐... 표지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마음에 담았다. 주인공이 50명인 이야기, 아니 사실은 세는 방법에 따라 더 많을 수도 있는 이야기. 서연모의 이야기에선 지나가는 사람이었던 고백희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같은 시간 속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주인공인 이야기. 나도 혹시 주인공이지 않을까. 악사도, 살리에르도, 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밤은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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