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앎이라는 아픔을 걷겠습니다

남형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by 최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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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대화하면 진이 다 빠져."

친구들과의 대화 끝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붙는다. 문장만 보면 참 지치고 힘들 것 같아서,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감사해진다. 이유를 물으면 "너는 끝까지 파고들잖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것도."라고 말한다. 나는 그럼에도 끝까지 파고든다. 있는 그대로 껍데기만으로 사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믿는다. 그냥 조금 지쳤을 뿐이라고, 에너지가 딸리는 거지. 대화의 끝에 숨은 본질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진이 빠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해하고 싶지 않다. 모 광고에서는 결혼을 '문명의 충돌'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사실 사람 간의 만남은 모두가 문명의 충돌인 것 같다. 그만큼 다른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한다면 당연히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해에서 멈출 것이냐, 오해를 넘어서서 본질을 생각할 것이냐는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프지만 한 번의 이해를 맛보면 앞으로는 오해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니까. 나는 오해를 푸는 과정은 아프다고 생각한다. 아픔이 두려워서 피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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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단어를 보고도 이렇게나 다르게 생각한다. 5! 을 표현했을 때 나는 5 팩토리얼인데, 상대방은 5!라는 강조어로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파고드는 것이다. 한번 파고들어서 싸우고 나면, 나는 상대가 문과임을 알게 되고 앞으로 있을 오해들을 줄여나갈 수 있겠지. 범위와 깊이는 다르지만 모든 대화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골골대지 마."라는 단순한 문장이 있더라도 그 배경에 '지병을 앓고 있는 친구'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리면 잘못이 된다. 그렇다면 잘못은 "골골대지 마."라고 말한 게 아니라, 지병의 유무를 알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무지가 오해를 낳는다. 나는 그래서 알아야겠다. 앞으로도 조금 진이 빠지더라도 알아야만 한다.


남형도 기자의 체헐리즘은 그런 앎에 대해 이야기한다. 굳이 브래지어를 입어보고, 굳이 노인이 되어보고 굳이 폐지를 줍는다. 그냥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고 되어보고 말한다. 완벽한 삶을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체험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나도 "이해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 전제에 '체험'이 있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가난해봤다. 하지만 굶을 정도로 가난해 본 것은 아니다. 폭력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나는 경험해봤지만, 체험보다 못한 경험을 해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감히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테니, 나는 앞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완전한 이해의 경지가 멀고 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내 나름대로 알아갈 테니 알려달라고, 당신이 아는 세상에 나를 초대해달라는 것이다. 아프지만 알아갈 테니, 조금 힘들어도 이 손을 놓지 말고 우리가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교보문고에 다니는 친구가 선물해 준 책이다. "이거 완전 최광래가 쓴 책이야."라는 표현을 담아 내게 준 선물이었다. 오랜 기간 문학에 빠져 있어서 읽지 못했었는데, 최근에 읽고 친구에게 깊은 감동을 느꼈다. 매번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 같은데, 알지 못하는 그 친구의 세계에도 노크를 해 보아야겠다.


오늘의 독후감은 어느 때보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힘들었다. 왜 그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문장을 적는 지금은 조금 울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알아가고, 체험하고, 닿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 끝에 진실된 우리들이 있다면, 기꺼이 이 아픔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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