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읽고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꽤나 아픈 것들이니까. 혹은 순간의 착오가 만들어 낸 거짓된 환상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참아보는 것이었다. 참기 위해서는 흔들리는 마음을 부정해야 했고 그 부정의 결과가 거짓말이 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실이 아픈 것도, 순간의 착오일까 봐 걱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거짓말을 하는 게 편했다. 나를 속이면 모든 톱니는 그대로 돌아가니까. 수많은 설명으로 보내야 할 투쟁이 귀찮았던 것이다.
세상이 괜찮음을 원하면,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가끔 후배들이 취업 고민을 들고 내게 찾아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뭐 결과적으로 해낸 사람들도 있지만, 명확히 말했어야 했다. 안 괜찮다고. 그런 선택을 하면 어떤 책임들이 남으며 비용이 들 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사실 귀찮았다. 깊게 생각하기도, 상대의 상태를 이해하기도.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만을 하는 것이 편했다.
최근에 좋은 기회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누구보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가장 어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라 참 좋다. 이번 주 과제는 같은 포맷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고 주제는 '괜찮아. ㅇㅇ하더라도."였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괜찮은 것'들에 집중했고 엔솔로지의 주제를 따라 위안과 위로를 보내고자 괜찮은 것들에 대해서 고민했고 괜찮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런데 한 분이 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넘기면 언젠가 돌아온다고, 네가 막연히 꿈을 위해 몸을 던지면 그 고통은 가족들이 다 떠받는 것이라고 책임 없이 괜찮다며 마음 쏠리는 대로 움직이는 행태에 대해 비수를 던졌다. 양심을 저격하는 그분의 에세이는 '괜찮지 않다! 세상이 괜찮다고 하더라도.'였고 나는 얼마나 많은 거짓으로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버렸나 생각했다.
오늘 준구가 찾아왔다. 학교 후배인데, 고민이 있다며 일산까지 왔다. 평소 같으면 무리해서 서울로 나갔을 텐데. 나는 솔직히 피곤하니 일산으로 오라고 말했다. 일단 거짓말 하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준구가 일산에 왔고 나는 밥을 사주고 싶어서 밥을 샀다. 설렁탕이 먹고 싶어서 설렁탕을 제안했고 먹고 싶은 게 없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 커피를 사겠다는 준구의 말에 그렇게 말해줘서 기쁘다고 말했고 먹고 싶은 메뉴를 말했다.
고민은 역시나 취업 고민이었다. 지금 있는 회사에서 정규직 제안이 왔는 데,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만두고 얻게 될 행복들을 같이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그만둬서 겪어야 할 고통과 비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별 것 아니라고 이야기할까 고민했지만 힘든 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자주 울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도 줬다고 말했다. 몸도 마음도 병들 수 있다고도 말했다. 고민에 빠진 후배를 위로하기 위해 달콤한 말들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를 찾아온 이상 나의 생각을 말해야만 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 거야. 하지만 거짓된 선택을 하면 미련이 생길 거야. 미련은 답도 없어." 자리를 마무리하며 준구에게 말했다. 나는 준구가 사회적 통념, 부모님의 기대, 개인이 신경 쓰는 눈치들에 휩쓸려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도 순간은 괜찮겠지만, 언젠간 그 대가를 치를 것임이 분명하기에 정규직을 포기하면 괜찮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온전히 노력에만 달린 일도 아니니, 그냥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는 우리의 자세는 책에 서술된 뫼르소의 우발적 살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의 소신은 대기업을 지망하거나 선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쉬운 선택이 되고 부족한 삶으로 비춰진다. 어디에도 우리의 이야기는 속하지 않는다. 재판에 선 피고에게도 묵비권이 있는데 우리에겐 권리가 없다. 객관적으로 나은 삶이라고 말하며, 선택의 주체들을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탁상공론이다. 본인들은 그렇게 하시길. 선택도 후회도 나의 몫이니 내가 기꺼이 아파하겠노라고.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건 그때 내가 후회할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준구가 더 많은 연봉과 큰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이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소신의 결과가 사회적 성공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회색 도시에서도 빛이 난다는 것을 조금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