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언어의 온도를 읽고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말을 거칠게 하는 편이었다. 공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말이 주는 따뜻함이 좋으면서도 그 순간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좋은 것들은 대게 부끄러운 일이다. 내겐 따뜻한 말이 그랬다. 받으면 좋은 것을 알고 나도 줄 수 있음을 알지만 말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가 그랬다. 언젠가 말투가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저격당하는 기분이 들어 콧방귀를 뀌곤 했다. 치부란 것이 원래 그렇다. 맞는 말이고 옳은 판단인 것을 아는데, 괜히 드러나면 발끈한다. 어쩌면 어떤 발언에 쉽게 흥분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그 말을 깊게 통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글은 아름답다. 그리고 섬세하다. 단, 섬세한 것은 대게 예민하다.
사용하는 단어는 어땠는가 되돌아본다. 욕을 자주 하지만 병x, 씨x처럼 사용만으로 타인에 대한 비하가 들어있는 단어들을 생각할 때면 멈칫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욕을 내뱉는다. 습관이란 것이 참 무서운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욕을 하는 나 자신이 익숙한 습관. 욕이 나오지 않으려는 상황에서도 결과적으로 뱉어버린다. 흠칫 놀라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엄청 당황스럽다. 나도 하려고 한 게 아닌데, 목구멍에서 놀던 단어와는 다르게 욕이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차별적인 단어들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언젠가는 이런 말 습관이 무서워서 아예 침묵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위폐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꾸민 흔적이 역력해요. 어딘지 부자연스럽죠. 가짜는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안 그래요. 진짜 지폐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가 부족한 탓이었다. 동시에 욕으로 기분을 표현했던 것이 문제였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면 되는데, 욕을 붙였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화가 난다.' 하면 될 것을 '개 같다.'라고 한 것이다. 애초에 주어진 감정을 욕으로 대체하다 보니 대체할 단어를 잊었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단어를 사용했다. 큰 자극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욕이 주는 격렬함이 평소의 단어를 잊게 했다. 뜨거운 감정과 자극적인 발음이 나의 감정을 격하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결국 나의 단어는 무언가를 데게 할 만큼 뜨거웠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결혼 생활을 아직 해보지 않아서 결혼이 미친 짓인지 아닌지 아직 잘 모르겠어. 하하,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이건 못 들은 거로 해줘. 다만 전에는 '나'를 위한 결혼을 하려 했던 것 같아. 이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를 위한 결혼을 생각하게 됐지.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뜨거움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리더의 뜨거움은 팀원들에게 신뢰가 되었다. 사랑의 순간에서 강렬한 불꽃이 되기도 했다. 차가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의 뜨거움은 구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겨울 장판을 태우는 아랫목처럼 오래 닿기에는, 편안함을 주기에는 나의 불꽃은 가끔 사람을 태우곤 했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 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어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를 돌아본다. 나는 나의 언어를 찾기 위해 나의 역사를 돌아본다. 어쩌면 차가운 것들이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폭력, 무시, 외로움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렇지만 같잖은 핑계라는 생각이 동시에 찾아온다. 역사가 현재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니까. 적어도 내게 태운 것들에게 나는 기억에 남을 뜨거운 것들이었을 테다. 좋았다면 강렬한 쾌감, 싫었다면 끔찍한 화상일 것이다. 사과도 무의미한 듯하다. 이미 지나간 것들이기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절도 무의미하다. 나의 좌절이 잠깐의 통쾌함은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죄책감으로 전세를 역전하기 때문이다. 자책을 무기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이 더욱 잔인한 일이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계절도, 감정도, 인연이란 것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
결국 현재다. 니체는 과거와 미래의 순환을 주장했다. 순환 고리의 중심에 선 현재, 내일의 과거가 되고 어제의 미래가 될 지금에 집중해본다. 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감정을 욕으로 표현하지 않기, 상대의 아픔을 존중해주기, 타인을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기. 왈칵 쏟아질 뜨거움이 걱정되지만, 적당히 차가울 겨울이다. 아랫목이 그리운, 핫팩이 필요한 겨울날. 화상을 입히지 않는 따뜻함으로 피어나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