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정세랑,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by 최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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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놓지 않으려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글이다.

읽는 것이던 쓰는 것이던 생각하는 것이던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나마 있는 장기가 '끈기'라서 글을 놓지 않고 지낸 지 몇 개월이 됐다.


평일은 쓰는 날들이 된다.

몸을 쓰고, 머리를 쓰고, 시간을 쓰고, 글을 쓴다.

대부분의 글은 좋은 글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잘 쓴 글이 대부분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글을 쓰는 일이 더 많다.

알고 보니 동갑이었던(92년생)의 유명 작가가 '꾸준함에 대하여' 말해 준 덕분에

그저 꾸준히 글을 쓰는 것뿐이다.


5일을 그렇게 쓰는 시간으로 보내고 나면 속이 빈 깡통이 된 느낌이다.

글에도 인풋과 아웃풋이 있다고 느껴진다.

"빈 깡통 털어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와요."

가끔 강의를 갈 때면 자주 했던 말인데, 글쓰기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제일 그렇다.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말에는 읽어서 채워야 한다.


이렇게라도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써지지 않는 깡통을 쥐어짜며 계속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지.

소중한 주말을 채워 읽고 채우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많이 읽는 사람들은 결국 쓰게 돼있어."

소설 속 심시선이 며느리인 난정에게 건넨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나의 '씀'에 핑계를 대기 위해 독서로 쫓아가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너는 책과 독서에 엄청난 가치를 두고 있지는 않잖아."

좋아하던 친구가 건넨 시선에 상처 받았지만,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 그 애 앞에서 나는 뭘 해도 모자란 사람 같았다. 열등감이 심했으니까.


책을 읽으며 남겨진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화수를 덮친 염산의 트라우마, 사 남매를 채운 이혼의 기억, 편입된 가족이라는 생각,

아빠를 닮은 해림의 관찰력, 피로 남기지 않아도 삶으로 남긴 기억들, 하와이까지.

그곳에는 남기려 하지 않아도 남는 것들이 있고 남기고 싶어도 남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전자의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항상 뭘 그렇게 묻히고 다닌다.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강화길 작가의 음복을 읽으며 친할머니를 생각했던 것처럼,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굳세고 강하며, 아직도 자식들과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시는 할머니.

몇십 번을 이사 다녀야 했던 할머니에게 이동은 어떤 의미였을까.

배움은, 결혼은, 자식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할머니가 기록자셨다면, 어떤 것들을 남기려 하셨을까?


형사를 꿈꿨던 어머니는 어떤 것들을 받으신 걸까.

결혼을 하지 않는 막내 외삼촌은 어떤 것들을 받았을까.

우리 가족은 어떤 시선으로부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살아가면서, 살아지면서

나는 어떤 것들을 받은 것일까. 어떤 것들을 묻히고 다닌 걸까.

시선일까. 시선(視線)일까. 시선(詩線)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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