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바쁘게 사는 게 뭐가 어때서

바쁘게 사는 게 불쌍한 건 아니라고

by 최광래

언제부턴가 서가에 찾아가면 "괜찮다.", "쉬어가자.", "도망가자." 같은 단어들이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서점은 트렌드를 나타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주제가 트렌드인걸 보면 사람들이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궁금하다. 얼마나 힘들게 살길래 서점에서 저런 이야기를 찾게 되는 것일까? 정말 힘든 사람이라면 서점에 올 시간도 없지 않을까. 바쁜 시절에 나는 유튜브 영상을 본 기억도 잘 안 났기 때문이다.


학교 후배가 바빠서 너무 힘들다고 전해왔다. 요즘 학교가 많이 바쁘구나 몇 년 사이에 교육과정이 달라졌구나 싶었다. 그런데 인스타를 보니 일주일에 세 번은 술을 마신다. 그보다 더 많은 다섯 번은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밤에는 산책도 한다. 바쁨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상대적인 것도 아니다. 매우 개인적인 것이었다. 내 눈에는 바빠 보이지 않았지만 바빴으리라.


반면 내가 아는 선배는 일주일에 나흘은 회사에서 잠을 청한다. 처리할 일이 많아서 출퇴근 시간이 아깝고 미팅과 회의로 낮을 보내면 개인적인 업무 처리는 밤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간에 티타임도 가지고 식사도 맛있게 하곤 하지만 그녀의 주 평균 근무시간은 70시간 이상. 아무리 개인적인 기준이라도 분명 바쁘게 사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선배는 매일을 즐거워했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며.


언젠가 선배가 사업가들의 모임에 다녀온 날을 기억한다. 선배는 퍽 기분이 상해서 자리로 돌아왔다. "안정적인 캐시 카우를 만들어야 해.", "대표가 너무 바쁘면 안 된다." 더 큰 기업의 선배들이 해 준 말이었고 그 말에 걱정과 애정이 들어있음은 잘 알지만, 자꾸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일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너무 피곤하게 산다.", "힘들어 보인다."라는 주변인의 걱정이 너무 스트레스라며 말했던 날이었다. 피곤한 것도 맞고 힘들 때가 있는 것도 맞지만 지금의 상황을 선택했기에 즐겁게 하고 있는 선배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본인이 이렇게 살고자 선택을 한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큰 기업에서 워라밸을 조금 더 챙기며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많이 주어졌었다. 스스로 감투를 버리고 야생으로 나온 것이다. 야생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자유로움을 찾아서.


다시 서점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쁨이 개인적임을 인정한 순간, 서점에서 있는 수많은 위로의 말들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동시에 개인이 느낀 위로를 타인에게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괜찮은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며 안쓰러워하지는 않아야 한다. 몇몇 광고회사에서는 실제로 주 52시간 근무제와 PC 오프제에 대해서 반발하는 사원들이 많았다.(물론 이건 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외침이 함께한다.) 내 기준에서는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별 일이 아니거나, 혹은 아예 즐거움일 수도 있는 법이다.


"바쁘게 사는 게 뭐가 어때서."


내가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닌가 고민이 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바쁨은 개인적인 것이다. 내 친구가 주에 30시간을 일한다고 해서 40시간을 일하는 내가 바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40시간을 일 하는 사람일 뿐이다. 30시간만 일해도 바쁘다고 느낄 수 있고 어쩌다 하루 과제로 밤을 새도 바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쉬어가도 괜찮아."라고 위로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스스로 바쁘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안쓰럽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나의 기준으로 그 사람들의 삶을 틀린 것으로 만들지 말자. 선한 의지가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위선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볼 것이 아닌 동등한 선택을 존중하며 옆에서 볼 것을 제안한다.


"바쁘게 사는 것, 당신이 괜찮다면 아무런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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