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에 '나'라는 감시자를 둬 보겠습니다.

한 아이돌의 인성 논란 기사를 접하고

by 최광래

오늘 어떤 아이돌의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접했다. 흔히 말하는 갑질에 대한 폭로, 흔하지만 흔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폭로는 업계의 동조를 얻었고 당사자는 사과문을 SNS에 업로드하며 일단락하려 했다. 하지만 쉽게 일단락되는 일은 아니었고, 사과문을 통해 더 많은 증언들이 이뤄지며 평소 행실과 태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나는 사람의 태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습관으로 만들어진 태도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태도에 집중하려 한다. 당장은 지식과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태도가 좋은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태도는 성장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수없이 지속된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태도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가해자에게 있다. 하지만 그의 부정적 태도를 만든 환경에 대한 지적이 함께했으면 한다. 사람의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이 참 아쉽지만 선하면 선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환경에 대한 지배를 받는다. 악인은 법으로 구속하고, 선인은 존경으로 칭송된다. 결국 선과 악의 잣대는 사회가 규정한 것이기에 사회에 종속된다. 따라서 사회와 같은 환경이 한 사람의 태도를 만들었음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환경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첫 째도 사람이오. 둘째도 사람이다. 먼저 아이돌 연습생 프로그램이나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이 이러한 도덕성에 대한 교육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보화 시대의 돌입으로 더 이상 연예인은 단편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할 정도로 일상을 일반인과 공유한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처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에게 비춰지는 것이다. 따라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아이돌 육성 프로세스도 도덕과 태도에 방점을 맞춰야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화려한 것만을 쫓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방관자적인 우리의 태도이다. 어느 업계나 그렇듯 연예계에도 관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특히 상하관계로 변질된 직책 관계가 연예계에서는 탑스타와 스탭을 의미하는 것 같다. 탑 스타의 부정적 태도가 지적받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감히 예측하건데, 당사자 본인은 본인의 잘못을 잘못인지도 인지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불편했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당연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함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갑질에서 편안함을 느낀 아이돌인가? 그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 것은 누구인가. 단편적으로 잘라서 사건을 바라보면 한 개인과 몇몇의 스탭 간의 갈등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사건에 이토록 분개하는 이유는 만연한 상하관계와 갑질에 대한 공감일테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그동안 바꾸지 못했다는 설움과 자책이 섞여있다.


우연한 기회로 한 회사에서 인사관리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신경쓰다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이 조직에 있구나' 라는 생각에 감사해진다. 한 편으론 우리 조직이 좋은 사람들이 좋게 지낼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한다. 시스템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대화의 방식이나 분위기, 사소하게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까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먼저인지 시스템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심벌즈가 좋은 타이밍에 맞아떨어져서 맑고 청량한 소리를 내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조직원들은 이러한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고 서로가 시스템을 지키고자 열심히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번 사태의 비난이 한 개인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인성이 부적절한 태도로 이어졌다고 해서 한 개인을 처단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아픔과 어려움을 공감하기에 예방책을 만들고 문화를 만든다. 그 문화 속에 존중과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함께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의 권력적 상하관계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해결에 힘써야 할 것이다. 사건의 방점을 한 개인의 인성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감히 제안해본다. 가해자에게는 사회적인 지탄과 교육을. 피해자에게는 공감을 담은 위로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시스템에는 '나'라는 감시자의 존재와 영향력을 보여주겠다 다짐해보자고.


만약 우리가 개인에 방점을 찍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다가올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자가 되는 것 아닐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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