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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Oct 25. 2020

우리가 작정해야만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지

작가학교 : 당신의 안부가 궁금한 날들, 두 번째 에세이

https://univ20.com/108619

*2020.10.30 대학내일 온라인 매거진에 투고되었습니다.

*이 글은 경의선책거리에서 진행한 '울림, 에세이가 되다. 작가학교 1기'의 작품집 내용입니다.


    첫 실기 수업이 있던 일 학년 가을, 작업실에서 나오면 항상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진 않았지만, 흡연구역 근처에 동기들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왔냐.” 하는 자연스러운 인사처럼 우리는 서로 그곳에서 만날 것을 당연히 여기곤 했다.


    ‘취업하고 나면 이런 만남도 힘들어지겠지’ 막연하게 생각은 들었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면 동기들이 보였고,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카페에도 옆자리를 내어줄 친구가 하나쯤은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난 날, 우울한 기분으로 술을 마시고 싶을 땐 작업실로 향했다. 같이 소주병을 기울일 친구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교수님을 원망하기도, 못난 내 솜씨를 탓하기도 하며 술을 마시고 있으면 수업이 끝난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우리는 어느새 테이블 한 줄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역 이후 만난 학교는 전혀 달랐다. 군대를 안 간 친구들은 이미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빠르면 조기 졸업을 하기도 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려고 카페에 가도 아는 사람이 없어 테이크아웃으로 마시기 일쑤였다. 혹시나 옥상에는 있지 않을까 싶어 올라가도 또 다른 일 학년들이 그때의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땐 복학생들이 있었다. 마주치긴 어렵지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후배들도 생각 이상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함께 지내다 보니, 내가 그리워했던 흡연구역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내가 휴학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인턴과 개인적인 공부로 보낸 이 년을 마치고 복학 신청을 했다. 취업 전 마지막 학교생활인 만큼,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이 년은 전공 이름이 바뀌고, 교수님이 바뀔 정도의 시간이었고, 과거의 머물러 있는 건 나뿐이었다. 작업실 옆은 금연구역이 된 지 오래였다.


    간만에 카톡을 켜서 동기들에게 연락을 했다. 일주일 뒤의 약속이었지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채 둘을 넘기지 못했다. 바쁘거나, 어색해졌거나, 불편하거나 각자의 이유로 우리는 더 이상 흡연구역에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초등학교 시절 놀이터에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듯, 작업실 옆 흡연구역으로 향하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카톡을 보내도 만나기가 어렵다. 우리는 작정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졸업하면 만나기 어려워져.”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졸업이 만나기 어려워지는 계기가 아니라, 대학생 시절이 만나기 쉬운 시절 같았다. 작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편한 사이가 아니라, 작정하지 않아도 옆에 있었으니까. 사실 취업을 하고서도 자주 만날 수 있음을 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그때처럼 편하게 만날 자신이 없다고 스스로 핑계를 대 본다.


    어쩌면 코로나는 스스로에게 찾아온 정리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넘겨왔으니까. 소중해서 곁에 있었던 것인지, 곁에 있어서 소중했던 것인지 대답하기가 어렵다. 질문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렇게까지 단절이 되어 봐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리가 진짜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일까?”


    가끔씩 개강 총회에서 서로를 처음 본 순간을 생각한다. 너무나도 다르지만 정말 가까웠던 사람들을. 흡연구역 앞에서 만나는 서로가 너무 자연스러웠던 시절을 생각한다. 나는 그때가 그립지만, 그때 우리가 정말로 소중한 사이였는지는 확답할 수 없다. 이렇게 작정해야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알아보려 노력해볼걸. 흡연구역의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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