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광래 Oct 25. 2020

달리다가 힘들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곤 해

작가학교 : 당신의 안부가 궁금한 날들, 마지막 에세이

*이 글은 경의선책거리에서 진행한 '울림, 에세이가 되다. 작가학교 1기'의 작품집 내용입니다.


    달리다가 힘들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곤 해. 그러면 진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거든. 달리기를 시작한 지는 어느새 삼 개월. 누군가에게는 ‘찰나’인 시간이 내겐 그리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자신이 없는 달리기라서 더욱 그랬다. 초등학생 시절 체육시간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중간에 토한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달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심장이 안 좋아서’, ‘폐가 좋지 않아서’ 라며 달리기로부터 도망치곤 했다.


    항상 그랬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나는 이 정도 재능이야’라며 자리를 피했다. 한 발 앞에서 멈춘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매달리지는 않았다. ‘이쯤이면 됐지’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일은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구토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였다. 그렇게 적당히 노력하다 안 되면 도망치는 것이 나의 쿨한 습관이자 찌질함이었다.


    이 년 간 취업을 준비했다. 일 년간 사랑에 매달렸다. 둘을 동시에 하느라 나는 무리해서 달려야만 했고, 이별과 최종 탈락을 마주한 나는 좌절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망치는 일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너무 무리하게 움직여서 두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좀 멈추자’라고 다리가 호소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멈춰야만 했다. 움직일 수 없어서 강제로 멈춘 것이다. 그동안 도망쳤던 것들이 한 번에 몰려서 찾아왔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천천히 스며드는 감각을 온몸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잠깐의 공황이 찾아오기도 했고 충동이 마음에 파도를 치는 일도 잦았다. 그렇지만 멈춰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기도 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멈추니 그제야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바라봐주지 않아 흉터 가득한 진심이었다. 순수한 꿈을 가둬 놓은 방에 조명을 켰다. 글쟁이가 되고 싶었던 아이가 울고 있었다. 달리느라 못 본 녀석들이었다.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나의 진심을 끌어안은 채 글을 쓰기로 했다.


지금도 잘 달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힘이 들면 잠깐 멈춘다. 하늘을 보고, 표정들을 보고, 들꽃을 본다. 그러고

나면 다시 달릴 만하다. ‘그래도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매일을 달린다. 가끔은 쉬는 날도 있지만 어쨌든 도망치지는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작정해야만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