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삶은 고통이라는 어떤 작가의 말처럼, 살아있기 때문에 힘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힘이 들 때 힘들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잠시 누워 쉴 수 있다면 쉬고, 그렇지 못한다면 소주 한 잔에 털어놓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일시적이지만 맛있는 음식과 담배 한 개비가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행복해도 잠을 자야 하는 것처럼, 살다 보니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힘들다는 표현은 조금 다릅니다. 보이고 들리니까요. 보고 듣는 일은 피로를 동반합니다. 매일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 친구는 만나기 꺼려집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좋은 것들만을 추구하게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줄게."라는 구식의 고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SNS가 발달 하면서 힘들다는 표현이 더 자주 보입니다. 진지하게 왜 그럴까 고민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통계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행복이 더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을 예시로 들면, 수십 명이 참가하지만 승리의 영광은 3명에게만 주어집니다. 그 셋 중에서도 금메달에 기준을 둔다면 한 명만 행복합니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어쩌면 불행하고 힘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말이 쉬운 거지, 사실 그 상황에서 행복하고 만족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일 겁니다.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불행을 느끼는 만큼 표현하기 쉬워졌습니다. 아니, 절대적으로 표현이 많아졌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표현이 많아졌지만 저는 SNS에서 행복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1.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지 않는다.
2. 대다수가 불행한 상황에서 행복은 질투를 유발한다.
3. 행복을 얻은 사람은 비교될 것을 예상하고 겸손을 유지한다.
통계적으로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제 주변에 긍정적인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긍정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라고. 그래서 조금은 겸손한 채 지낸다고 했습니다. 굳이 SNS를 활용하지 않아도 삶이 풍요로우니 행복한 현실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해야겠죠. 비교하지 않아야겠죠. 하지만 그 어려운 경지를 하지 못한다고 매일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있는 한 비교에 초연해지기 힘듭니다. 분명한 답이 있을수록 답에 닿지 못하는 자신이 모자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친구들이 긍정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매일 열등감을 느끼고 부족함을 느껴서 밤에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공부로 풀어서 다행이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작은 슬픔을 위로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NS를 통해 더 많고 얕은 관계에 노출이 쉽게 됩니다. 불행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때 건네는 위로가 달콤한 사탕 같다고 생각합니다. 불안과 우울을 씻어내는 달콤한 맛.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통제만으로는 병을 낫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쉽게 건넨 위로가 상대의 건강을 해칠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충분히 불행을 맛보고 행복을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어쩌면 우리는 쉬운 위로로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며, 자신은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괴로워서 재촉하듯 응원과 위로를 건네 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이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바라보고 싶은 자신을 위한 간절한 부탁이었다."
IU, love poem 앨범의 서문에서.
저는 모든 위로가 상대를 해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SNS라는 세상 속에서 표현이 쉬워진 만큼 우리는 쉽게 불행과 우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쉽게 쓰인 우울에 쉽게 던지는 우울이 서로를 망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이유가 말하는 응원과 위로는 '지켜보고 다듬어서 전달하는 진심 어린 위로'가 아닌 가볍고 쉬운 위로의 말들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힘내.'라고 전하기 전에 상대의 상황을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위로와 응원이라는 결괏값 이전에 진심 어린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로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지만, 아무런 가치 없는 위로를 전하기엔 우리 진심이 조금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조금은 무시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감정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며 결국 행복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