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욕조에 빠진 사진
열일곱 무렵의 어느 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욕조 물 위에 떠 있는 한 장의 사진,
그것은 마치 부르스 매캔들리스가 우주에서 끈 없이 유영하는 것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말간 인화 종이에 늘 봐왔던 자유공원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친구였던 L이 암실에서 인화를 하고 욕조에서 수세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 나는, 내 영혼이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의 끝까지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한 편으로는 희망이지만 절대 이룰 수 없는 절망의 조각이기도 했다.
"사진, 어떻게 배울 수 있어?"
"그냥 하면 돼."
그러나 나는 "그냥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그 당시 니콘 FM2 카메라 한 대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이걸 왜 찍었지?"
"응,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달라. 사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지. 안 그래? 주변을 봐. 우리가 매일 다니던 길에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야. 오다가 골목 담벼락에 붙어 핀 붓꽃 봤어? 우리는 우리가 관심 있는 것만 보게 돼. 하지만 카메라는 우리가 못 본 것들도 보여주지."
사진은 우리가 응시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못 본 것들도 보여준다"는 친구의 말이 오랫동안 귓속을 맴돌았다. 친구 L은 그렇게 사진에 푹 빠져 있었고, 나는 그 친구를 줄곧 쫓아다녔다. 사진이 붙잡은 시간은 마법과도 같아 보였다. 한 세계를 네모나게 잘라서 보관한다는 것. 어쩌면 시간의 무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해가 흘렀고, 또 어느 날이 왔다.
나는 지금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다.
자유공원이다. 학창 시절, 욕조에 빠져있던 친구의 사진과 닮았다. 하지만 그때 사진은 벚꽃의 배경이 아니라 아카시아 나무 배경이었으리라. 봄이면 교정에 아카시아 향기가 물감처럼 번졌다. 교실 창문 너머로는 맥아더 동상이 아카시아 나무 사이로 슬핏슬핏 보였다. 나는 손가락 카메라를 만들어 그것을 프레임 안에 넣어보면서 사진이라는 마력에 빠지고 있었다.
*김보섭은 인천 출신으로 오랫동안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진기록 작업에 몰두해 왔으며, 인천 차이나타운과 민초들의 초상을 주제로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