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명동 필하모니
암체어는 푹신했다. 때론 브람스를 듣다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음악감상실 한쪽 벽에는 어느 작곡가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뒤늦게 그가 스트라빈스키 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필하모니'에서 토스카니니, 자발리슈, 카라얀, 슬레트킨, 뵘 등의 지휘자 이름을 외웠다.
'필하모니'는 명동 샤보이 호텔 맞은편에 있었는데, 음료 티켓을 한 장 사면 종일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거칠고 암울했고 어수선했던 시절이었지만, 자칭 문청이었던 나는 책방으로 영화관으로 음악감상실로 쏘다니던 시기였다. 교보문고를 거쳐 종로서적을 갔다가 대학로에 있는 '오감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필하모니'를 찾았다. 사실, 음악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곳의 문화적 진보랄까 어떤 비장한 분위기를 호흡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뭘까?"
"문학은 뭘까?"
"사진은 뭘까?"
진공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는 "이미 있어 온 것들은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없다."라는 존 버거의 말을 부정하게 했다. 음악은, 문학은, 사진은 이미 있어 온 것들이 아닌가? 그것을 근거로 또 다른 창작이 이뤄지지 않는가. 이미 있었지만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경함으로부터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리라.
"이 사진은 누가 찍었지?"
"아놀드 뉴먼"
"사진에 군더더기가 없네."
"응. 크롭을 한 거야. 사진을 찍은 뒤에 불필요하다거나, 거슬리는 부분을 잘라내서 다른 구성을 만들어내는 거지. 아놀드 뉴먼은 저명인사나 예술가들의 초상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들의 생활현장을 끌어들여 조형적인 화면을 만들어냈지."
사진가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다양한 포즈를 연구하고 공간을 연출한다. 자. 그대들이라면, 어떤 컷을 선택했을까?
사진에 대한 꿈과 열망은 넘쳐나고 있었지만, 사진은 내가 가까이할 수 없는 하나의 사치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보는 것보다 인쇄물과 책으로 먼저 사진을 배웠다. 명동 '필하모니', 어두침침한 음악감상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오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듣는다.
*사진출처
https://davedye.com/2018/04/09/hands-up-whos-heard-of-environmental-portra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