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홀가 토이카메라 _ 강릉 경포대
청량리를 출발한 기차는 긴 피로의 한 숨을 토하며, 새벽 찬바람 속에 나를 내려놓았다.
왜 강릉을 선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간혹 월미도에 가서 짠물 바다를 보곤했지만,
스무살, 내 인생의 첫 여행 선택지로서는 대단한 호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겨울바다다.
강릉에 도착하니 어둠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지 하늘이 엷게 벌어지고 있었다.
택시를 불렀다.
"경포대로 가 주세요."
추운 바람을 일으키며 택시는 금방 경포대에 도착했다.
바람이 거세져 있었다.
검은 수평선을 차고 들어오는 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그러나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음속의 것들이 들끓어 가슴이 벅차 오른 탓이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야아~~" 자그맣게 소리를 내 보았다.
아무도 없는 이 바다, 그리고 이 숱한 모래들...
좀 더 크게 "야아야~~" 지르고 나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다.
또다시 "야야야~~" 좀 더 크게 크게 크게, 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모래 속에 발이 푹푹 빠지며 발바닥을 자극했다.
신발을 벗어 던졌다.
훨씬 편해진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갔다.
미친놈처럼 날뛰다가 숨이 차서 그냥 누워버렸다.
온통 모래 범벅이다.
대충 모래를 털고 나니 허기가 지고 잠이 쏟아졌다.
얼마를 잤을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아무 거리낌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총각, 무슨 잠을 그렇게 자. 테레비도 안 보고. 테레비 켜봐. 총각"
"왜?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속옷만 걸치고 있어서 짐짓 부끄런 표정으로 물었다.
"테레비 속에 지금 뭐가 나오는지 알어? 학생."
아주머니가 켠 티브이에서는 한참 뉴스가 진행 중이었고, '속보'라는 글씨가 보였다.
"저거봐. 김만철이란 사람이 지 가족을 모조리 데리고 귀순 했다잖어."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고싶습네다!"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이라고 했다.
티브이 화면은 얼굴이 시커멓게 탄 김씨 일가를 보여주며 그 귀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난 또 무슨 큰일이라고."
귀순이 큰 뉴스거리였던 시절이었다.
탈출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온 세계를 거부하고 죽음을 담보하며 탈출한다는 것, 그 가당찮은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변형된 이념으로 개입한다는 것, 산다는 것이 저런 것일까? 벗어난다고 벗어날 수 있는 세계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스무해가 지나 그 바다에 다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