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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OOOP May 17. 2021

사진에 관한 잔상들

북촌

복촌 마을에 왔습니다.

이 마을에는 이름조차 없는 작은 포구가 있습니다.


86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해넘이길로 우회전하면

영업을 접은 노을 마차 앞에 기역자로 구불어진 포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보잘것없는 포구라서 그냥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어둠이 질 무렵,

아주 서서히 포구 가로등에 불이 하나 켜집니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나고 나서야 또 하나의 불이 들어옵니다.

왜 시간차를 두고 불이 켜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는 외로움이 깊고 하나는 즐거움이 가득해서

등을 켜는 것을 잠시 늦췄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살다보면 외롭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잠시 마음을 위안해 줄 장소가 필요하다고 느끼지요.

작은 포구에 가서 파도가 오고갈 때 한 바탕 울음을 쏟아냅니다.


복촌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곳.

홀로일 때 시린 가슴을 스다듬을 수 있는 곳.


<기별>이란 작품의 시작을 이곳에서 했습니다.

작가로서 흔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무데도 마음 둘 때가 없었습니다.


어스름이 내릴 때, 가로등의 불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기별 _ gelatin silver print _ 160cm×75cm _ 여수 복촌


[고즈넉한 밤의 시간, 때론 화려한 밤바다가 필름 안으로 들어와, 내밀하고 깊숙한 말들을 빚어 놓는다. 시간의 리듬감, 감정의 밀물과 썰물이 약동할 때, 불안과 고독의 시간은 함께 몰려온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밤으로부터의 기별(寄別)이 반갑고도 따스하다.] _ 기별 전시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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