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어머니가 말했다.
한때 나는 마당에 심은 파초처럼 키가 자랐고, 내 키보다 훌쩍 큰 앵두나무 아래에서 흑백사진 한 장으로 남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빌려온 사진기는 나 말고도 동생과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담았으나 웬일인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날은 흐렸고, 촛점이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사진 속 나의 얼굴은 어둡고 희미해 보였다. 이미 낡아버린 시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거기에 머물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것보다 찍히는 것을 싫어하던 아버지 또한, 나에게 말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기억하기 싫은 순간도 어쩔 수 없이 기억해야할 순간도 다 그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료하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나는 문득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그냥 확인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신변에 어떠한 위협이 있거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입니다.” 경찰의 손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사진을 보고 풋,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나라면 아니 나의 신체의 일부라면 나는 유력한 용의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내일 서로 한 번 나오시겠습니까? 그냥 확인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찰은 이미 나의 도주 가능성을 점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고 도망갈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안다. 틀림없는 사실 하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한때의 그녀가 죽은 것이다. 죽은 그녀의 지갑으로부터 나는 새롭게 발굴된 유력한 증거물이었다. 삶이란 일종의 그런 것이다. 부각되어 남에게 가끔 들춰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닥칠 수도 있는 것이다. 들춰져 까발려진다고 생각하니 새삼, 그 동안의 내 삶이 참으로 건조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삶의 일부가 그녀의 지갑으로부터 새어나왔다라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할 뿐이었다.
경찰서를 다녀오며 결코 나는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고 믿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나와 그녀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