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힘든 계절입니다. 월동준비에는 동식물이 따로 없죠. 동물들이 해마다 겨울이면 따뜻한 곳으로 서식지를 옮기거나 겨울잠을 자며 추위를 견디듯, 식물들의 겨울나기도 다양합니다. 목련이나 동백은 겨울눈으로 추위를 버티고, 나팔꽃과 채송화 등 한해살이풀들은 말라죽기 전에 씨앗을 흩뿌려 이듬해에 새로운 생을 이어가죠. 개중에는 풀이면서도 추위에 약한 보통 풀들과는 달리 겨우내 말라 죽지 않고 버텨내는 녀석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매우 흔한 녀석이죠. 질긴 생명력의 대명사, 바로 민들레입니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우리나라입니다. 민들레는 대개 봄부터 꽃을 피우지만,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도 양지바른 곳에 꽃을 피우는 녀석들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는 약 한 세기 전에 이 땅에 귀화한 유럽 원산의 서양민들레입니다.
토종 민들레와 서양민들레는 서로 꽃의 모양과 색이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둘은 꽃받침의 모양으로 구별됩니다. 토종 민들레의 꽃받침은 위쪽으로 솟아있고, 서양민들레의 꽃받침은 아래쪽으로 동그랗게 말려 처져 있거든요. 사실 꽃받침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둘을 구별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반드시 수분을 해야 씨앗을 맺는 토종 민들레와는 달리, 서양민들레는 여의치 않으면 자가수분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번식력을 가진 서양민들레가 조용히 이 땅에서 우점종을 이루게 됐죠.
불청객으로 취급하기에는 서양민들레가 이 땅에 정을 붙이고 산 세월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우리 주변 지천에 단단히 뿌리 내린 서양민들레를 생태계 교란 식물로 배척하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그보다 서양민들레가 이 땅의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영향을 주는지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민들레는 그냥 밟는 정도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심지어 벌어진 교각이나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꽃을 피우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하죠. 민들레의 생명력은 겨울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민들레는 냉이, 달맞이꽃, 엉겅퀴 등과 더불어 이른 바 로제트 형(Rosette Type) 식물 중 하나입니다. 로제트형 식물은 뿌리에서 직접 나온 잎이 바닥에 들러붙어 넓게 장미꽃 모양의 동심원을 그리며 포개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통해 민들레는 한겨울에 찬바람을 피하고, 최대한 많은 햇볕을 끌어 모으며 삶을 도모하죠. 참으로 지혜롭게 시련과 맞서는 식물이 아닌가요?
모두가 숨을 죽인 겨울, 계절 탓에 의기소침해지거든 주변 화단을 한 번 둘러보시죠. 납작 엎드려 겨울나기를 하는 민들레의 모습은 따뜻한 계절에 피어난 소담한 꽃 이상으로 마음을 울립니다.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겨울에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꽃말입니다. 가끔은 말 없는 식물이 그 어떤 우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더군요.
민들레를 만나는 방법 : 식물도감은 민들레의 개화시기를 4~5월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민들레는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개화시기를 따지는 게 의미 없는 들꽃입니다. 한겨울에 풀들이 말라죽은 들판에 풋기가 보이면 잎을 납작 엎드려 펼친 채 겨울을 나는 민들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