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제가 걷는 길이 맞는 길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50대 중반, 오랫동안 한 조직에서 성실하게 일해온 한 리더가 내 앞에서 읊조리며 말했다. 많은 대한민국의 리더들이 그렇듯 그도 늘 ‘책임감 있는 리더’라는 역할에 충실했지만, 갑작스러운 퇴직을 앞두고 문득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고 했다. 복잡한 심경 속에 있을 그에게 물었다. “리더님을 이끄는 별은 무엇입니까?”
그는 몇 차례의 코칭을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열망,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자신의 북극성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퇴직 후,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아마추어 시니어 모델 활동을 시작하며 원했던 무대에서 당당한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SNS에서 보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어 보는 사람이 다 행복할 정도다.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대 항해자들은 바다 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북극성(Polaris)을 보며 방향을 잡았다. 북극성은 ‘변하지 않는 기준점’으로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비유로 자주 등장한다. 마치 항해자가 북극성을 따라 길을 찾듯이, 우리는 삶에서 자신만의 북극성을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나만의 북극성’이 있다면 우리는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누구인지, 내 안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자기 탐색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이 여정을 한 단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줄, 나의 북극성을 찾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이 자원을 가지고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이 명확한가? 진정 어디로 가고 싶은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등등 각자의 위치에서 방향을 찾기 위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평생 자신을 발견하고 탐험하는 여정을 계속한다. 소크라테스가 던진 ‘너 자신을 알라’는 메시지의 깊이는 내가 나를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와닿는다.
작가 J.K. 롤링(영문)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 전, 오랜 시간 실직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글을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주변에서는 이제는 그만두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실패라고 여겼을 그 시간도, 그녀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북극성을 더 명확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가슴속 방향이 명확했기 때문에, 흔들려도 그 시간을 묵묵히 글을 쓰며 결국 해내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롤링이 끝까지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것도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우리는 본질을 찾는 질문, Why(의미)를 물어야 한다. 나에게 이 일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찾는 미션과 비전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내 삶의 Why를 찾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다. 나는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을 돕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무엇으로 도울지에 대한 것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왓 두유 원트?(What do you want?)”에 대한 답을 찾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Why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What을 찾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떤 질문이 더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두 질문에 답하면 How 질문에 대한 답은 수월하게 찾아질 수 있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지금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질문에 즉시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이 질문을 품고 나아가는 것이다.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명확히 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삶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악동 뮤지션의 멤버, 이찬혁의 ‘장례희망’이란 노래를 듣고 나는 나의 마지막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흰 국화 대신 생기 넘치는 진분홍 작약꽃으로 둘러싸인, 축복과 기쁨이 가득한 삶의 마지막을 꿈꾸게 되었다. 이런 명확한 그림이 나의 인생에서 북극성 같은 역할을 해준다. 마지막을 상상한 것처럼 살려면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성은 단순히 멋지고 화려한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흔들리는 삶 속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점이다. 때때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더라도, 나는 이 기준을 다시 바라보고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이제 다시 스스로에게 묻자. “나의 북극성은 어디에 있는가?”
통계청 통계개발원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24>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50~69세에 해당하는 ‘신중년’은 전체 인구의 1/4 규모로 생산 가능 인구의 1/3을 차지하며, 과거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은 2010년 36.2%에서 2024년 45.9%로 상승했고, 정부는 이들을 위한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을 지속 운영 중이다.
이는 신중년 세대가 단순한 은퇴자가 아닌, 새로운 커리어를 설계하는 능동적인 항해자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방향을 찾는 이들에게 ‘나만의 북극성’을 설정하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시 한번 묻는다. 나를 이끌고 있는 별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