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성과 없이 버티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시간, 그 긴 터널 속에서 “이게 맞나?” 스스로 묻게 되는 시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지, 시간 낭비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한다. 하지만 진짜 성장은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검도에는 ‘수파리(守破離)’라는 훈련이 있다. 실제 시합이 아니라, 검을 들고 베는 동작만 수백, 수천 번 반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연습이다. 처음에는 무척 지루한 과정이다. 당장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화려한 기술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초심자에게는 지루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고수일수록 수파리를 더 철저히 한다. 검의 무게감, 손목의 각도, 발의 위치, 호흡의 리듬이 몸에 완전히 새겨질 때까지, 묵묵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 각인된 기본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동으로 나온다. 삶과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 결과를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단단하게 하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전 부모님을 모시고 담양 대나무숲, 죽녹원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솟아오른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치며 내는 소리는, 마치 오래 준비한 자만이 낼 수 있는 깊고 묵직한 울림 같았다. 대나무는 씨앗을 심은 뒤 4~5년 동안 땅 위로 거의 자라지 않는다. 대신 땅속 깊숙이, 넓게 뿌리를 뻗는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면 단 6주 만에 15미터 이상 자라난다. 어느 순간 폭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이 있어야, 폭발적 성장이 가능하다.
패션 디자이너 베라 왕(Vera Wang)의 인생도 대나무와 닮았다. 그녀는 원래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 1968년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에 도전했으나 탈락하고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후 패션 잡지 <보그(Vogue)>에서 패션 에디터로 17년간 현장을 배웠고, 유명 브랜드 랄프 로렌( Ralph Lauren)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경력을 쌓았다. 마흔 살이 되던 해, 자신의 결혼식 드레스를 찾다 스스로 디자인을 결심했고, 그 해에 첫 웨딩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물론 처음부터 대성공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감각, 업계 네트워크, 브랜드 이해도가 결합하며 그녀는 빠르게 정상에 올랐다. 겉으로는 ‘40세에 시작한 기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9년간의 ‘수파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40년 인생 전체가 매일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폭발을 준비한 축적의 시간이었다.
Doing이란 단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속도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에너지를 모으고, 힘을 비축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대나무처럼, 베라 왕처럼, 그리고 수파리를 하는 검객처럼, 준비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우리는 자라고 있다. ‘중꺽맘(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축적의 힘을 쌓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