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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May 08. 2024

책을 통해 만들어 가는 나

학창 시절에 공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본질은 자유로운 영혼이었을 저였지만 가정환경과 당시의 교육현장이 그런 저를 가두는 틀로 작동을 잘했다는 것을. 그 틀에 반하는 기개도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삶의 바다에 순응하며 흘러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공부는 재미없으니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혼나지 않을 정도의 성적만 내며 공부에 쏟아야 할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썼습니다. 어린 시절 다들 똘똘한 시절을 겪었던 것처럼 저 역시도 머리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공부도 곧잘 했었기에 투입한 노력대비 결과가 너무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부터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을까 생각해 보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당시 유행했던 ‘속독학원’에 다녔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공부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은 특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수업 사이 짧은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가야 하고, 친구들과 떠들며 매점도 다녀오고 해야 하는 틈에도 집에서 책가방에 넣어 온 소설책을 꺼내 놓고 읽을 정도였습니다. 사춘기 소녀 시절의 지적 허영심이 제대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이나 동화책 등 온갖 책 읽기를 좋아했고, 아버지께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셔서 늘 책을 접하는 것이 쉬운 환경이었습니다. 당시에도 고전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책을 그저 닥치는 대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많이 읽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 중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있는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 지금 제목만 들어도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책들입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며 읽었다고 볼 수 없는,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울만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 책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심오한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는 수준인데, 이런 종류의 책들을 뜻을 알고 읽기보다 읽어내는데 집중했던 시기였던 것 습니다. 지적 우월감을 제대로 갖고 있었나 싶습니다. 언젠가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중학교 2학년 시절에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제 생각과 가치관들이 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조숙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인가는 친구들 4명과 함께 용돈을 직접 벌어보겠다는 깜찍한 생각도 했습니다. 다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서라기보다 무언가 내 힘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보다 신기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제 스스로,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 여자 아이들 4명이서 어떤 일로 용돈을 벌까 궁리를 했습니다. 학생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아르바이트가 일상이 된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 말고 짧은 시간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했기에 서점에서 일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제 기억에 당시 춘천 명동입구에 서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서점에서 책을 맘껏 볼 수 있겠다는 사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곳에 일하자고 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결국 저는 친구와 함께 방과 후에 석간신문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계획과 의지는 창대했으나 13살의 어린아이가 신문을 돌린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 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에 참 좋은 경험을 많이 해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석간신문을 돌리니 어른들 눈에는 귀엽게 혹은 안쓰럽게 보이셨을 겁니다. 약국에 갔는데, 박카스 같은 것을 주시면서 마시라고 하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첫날이니 길안내 한다고 함께 다녔던 분도 참 기특하게 저희를 대해주셨습니다. 


이런 도전들은 사실 제가 책을 좋아하지 않고 제 의식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공부에 그다지 취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 제가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하게 했고 그것을 도전이라는 틀로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정말 책을 잘 안 읽는다고 하지만, 책을 통해서 꿈을 갖고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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