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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Aug 14. 2023

엄마와 나

그래서 어쩔 건데?

엄마가 불쌍했고, 엄마를 부러워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 (엄마가 불쌍했던 이야기는 다음에 또 시간을 내서 풀어놓도록 할게요) 그 이 전에 저는 엄마를 너무 좋아했어요. 어린 제 눈에 엄마는 너무 예뻤고, 엄마가 장난으로 "나 미스코리아였어"라고 하신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미스코리아다"라고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예쁜 엄마가 왜 이상한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 그 질문이 어린 저에겐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었죠. 제 눈에 아빠는 정말 이상했거든요.  


엄마는 타고나길 눈치가 빠르시고, 잘 알아차리시고, 감수성이 뛰어나시고, 제 눈엔 모든 게 완벽해 보였죠. 단, 음치라는 것 빼고요.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길을 나서면 사람들은 엄마에게 말을 걸고, 엄마는 그런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응대를 하시고, 그럴 때마다 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때론 화를 내며 짜증을 부리기도 했었던 기억도 있어요.


나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데, 왜 엄마는 나 말고도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왜 엄마는 어딜 가나 그렇게 존재감이 있고, 인기가 많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엄마가 밉다. 그런데 또 엄마는 토라지고 삐친 나를 능수능란하게 달래주셨네요. 엄마와 저는 일반인이 아니라 약간 귀신같은 면(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고, 많은 감정 자극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특성)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이건 제가 엄마를 빼다 밖았네요.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한테 화가 나고, 심술이 났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기질이 달랐던 건데~ 저는 엄마와 저를 비교하면서 제 자신이 작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대학원 졸업식 당일날도 저는 제 머리는 샴푸 한 번 하고, 자연건조 시키고, 옷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었는데 엄마 머리를 제가 손수 드라이해 드리고, 엄마 얼굴 화장을 해드렸네요. 저는 다른 사람 머리 만지고, 화장해 주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한 때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면 정말 재밌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지요. 다 너무 옛날이야기이지만요.


엄마가 시켜서 메이크업한 게 아니라 정말 해드리고 싶었어요. 엄마가 시켰다면 저는 딱 잘라서 거절했을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정서적 지지가 큰 몫을 했으니까요. 저는 대학원 과정을 중퇴하고자 했었거든요. 검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진단을 내리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 세상 누구보다 엄마를 좋아하고, 예쁜 엄마를 더 예쁘게 지켜드리고 싶었거든요. 엄마는 제가 100번 토라져도 101번 달래주는 사람이고, 이 세상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엄마에게만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엄마와 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들으면, 당신 모녀는 전생의 연인 같다고들 합디다. 엄마와 저는 어쩌면 반대의 기질인데 희한하게 합이 잘 맞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엄마와 나의 관계를 그렇게 만드신 분이 또 아빠이기도 했고요. 어릴 땐 이게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최근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심리치료사가 된 건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 클 수도 있었겠다. 나도 누군가와 대화를 잘 하고 싶었는데, 엄마처럼 외향적이지 못하고 엄마처럼 매력이 없어서 대화를 할 기회가 없는데 상담사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고 받아적고 반응하고, 머무르며, 질문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걸 직업적으로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는 이런 욕구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마와 저와의 다른 점이라면 저는 뜨거운 면과 차가운 면이 공존한다는 것, 엄마는 잔잔한 물결같다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 제 마음의 뜨거움은 상담자로서의 정체성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 오케이 오케이 그냥 다 내려놓고 물흐르듯이 살 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안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요. 오케이 오케이 그냥 우울하고 병든채로 영점(zero point)을 유지하면서 바람과 욕구, 욕심을 다 버리고 영점(zero opint)에 만족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요. 그걸 선택할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그 지점을 고민하고, 모색합니다. 어느 지점에서 더 욕심을 내서 열정을 부어야 할지, 어느 지점을 포기해야 할지, 이게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릿 속을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그냥 휴전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싸움질 해봤자 멘탈만 탈탈 털린다는 것도 이미 경험했구요. 그래서 어떡하냐고? 흐음, 일단은 그건 그대로 두고, 글 쓰고, 상담하고, 일상을 살면서 조금씩 마음을 관찰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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