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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Aug 27. 2023

어느 박복했던 여자의 아들

아이에게 쓰는 편지 1

안녕~ 아이야. 어떻게 지내고 있었니? 이번 여름 많이 더웠지?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 졌어. 편지 글이 아니면 말이 안 나올 것 같아서 편지를 쓸게.


옛날에 어느 마을에 못생기고, 가난한 처자가 살았대. 그 처자는 혼기가 되어도 시집을 못 갔나 봐. 못생기고 가난하다고 다 시집을 못 가는 건 아닐 텐데, 성격이 독했나? 독하고 거칠었다고 해. 말을 부드럽게 하지 않고, 세게 하는 스타일? 그런 거 있잖아. 같은 말을 해도 예쁘게 하지 않고, 세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지.


그러다가 20세 이상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아저씨에게 시집을 갔었지. 그 아저씨는 6.25 전쟁 통에 부인을 여의고, 자식 몇 명을 여읜 아저씨, 음.. 선비라고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같은 동네에서 인품이 좋고, 욕심도 없고, 글 읽기를 좋아하던 맑은 성정의 그 선비에게 시집을 갔었대.


그 가난한 여자는 그 선비(아저씨)의 전처 자식들도 돌봐야 하고, 그 가족의 생계도 책임을 져야 하는 박복한 삶을 살았지. 왜 그 여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을까? 그 여자의 남편은 고결하고 순수한 분이셔서 돈을 버는 일을 천박하다고 생각하셨나 봐.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주역을 가르치고, 훈장 일을 하시느라 생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나 봐. 가끔 동네 사람들의 운명을 읽어주고, 인생 상담 비슷한 것을 하셨던 것 같아. 그러느라 바빴나 봐.


그래서 그 여자는 시골 장에서 쌀을 팔고, 나물을 팔았을 거야. 처음부터 장에서 물건을 팔진 않았던 것 같아. 쌀과 나물을 팔기 전에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을 낳았어. 그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장으로 나갔던 것 같아.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 여자가 낳은 아들, 아들에 대한 이야기야.


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처자의 나이는 20대 중반, 선비의 나이는 거의 50이 되었을 거야. 처자는 고생 고생 끝에 귀한 첫아들을 낳은 거지. 선비 또한 자식이 여러 명이 있었지만 그 아들이 얼마나 귀했을까? 너무 귀한 아들이라서 회초리를 들었을 때도 회초리로 아들의 종아리를 치지 못하고, 간질이는 수준으로 회초리를 때렸다고 해. 어릴 땐 그게 말이 될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이가 50이 되고, 여러 아이들을 키웠던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그 아들은 6.25 전쟁이 끝나고 태어났고, 아버지의 고결한 사랑을 받았을 거야. 그런데 그 어머니가 박복한 처자였잖아. 기질이 강하고, 독한 그분이 아들이 고열에 시달리자 약을 먹였대. 그런데 그 약이 그 아들로 하여금 말을 못 하게, 말을 더, 더듬, 더듬게 만들었어. 그게 그 아들의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


그 아들은 말을 더듬고, 놀림을 받았겠지. 그 절망을 꼬마가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을 겪었을 거야. 아마 수시로 죽고 싶었을 것 같아.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분노가 마음속에 차곡차곡 고였을 거야. 그럴 때마다 나무를 깎아서 무기를 만들었지. 무기로 뭘 하려고 했던 걸까? 아마 나무를 깎으면서 자신의 절망을 깎았을지도 몰라.


그렇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을 받는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부였던 것 같아. 고결한 선비를 닮아 그 아들은 두뇌가 명석하고, 집중력이 좋았대.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인정을 받았고, 그게 그 아이의 정체성이 된 거지. 살아남기 위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 한 거지. 그리고 그 시골 마을에선 그 아들처럼 머리가 좋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없었기에 공부로 두각을 나타내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가 쉬웠을 것 같기도 해.


그리고 아들은 고등학교에 가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운동도 열심히 했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니 아무도 그 아들을 건들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타고나길 성격이 내성적인 그 아들은 딱 그 정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준으로 해냈을 것 같아.


그 아들이 간 고등학교는 상업고등학교였어. 집에 돈이 없으니까, 가난하니까 상고를 졸업해서 취업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아들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교에 진학을 한 거야. 대학교에 가서도 아마 수석을 놓치지 않았을 거야. 등록금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으니까.




난, 아이 너에게 왜 이 박복한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 박복한 여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 박복한 여자를 시작으로 그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네 마음을 녹여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 같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너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시작했어. 하다 보면 되겠지? 시작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으니까.


난 정말 부끄러워, 나를 너에게 드러내는 게, 그리고 그렇게 드러내서 무슨 소용일까~라는 의구심도 마음 한편에 계속, 계에속 남아있어. 그런데도 시작했어.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할게, 다음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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