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 Apr 09. 2024

임상 심리하려다가 상담 심리하게 된 썰 2

그러면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올해 2월 10일에 1편을 쓰고, 이제야 2편을 쓰고 싶어 져서 자리에 앉습니다. 오래간만에 시간이 나서 날씨도 좋고, 산책이나 하러 가려고 했는데 산책보다는 방 안에 틀어박혀서 글을 쓰는 게 좀 더 지금 내 상태와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는데,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멍을 때리다 보니 쓰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네요. 그래서 바로 착수합니다. 이 마음, 지금 잡지 않으면 또 흩어져 버릴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임상심리학을 석사 과정에서 공부할 때는 모든 검사에 홀릭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mmpi 검사를 해대고, 검사 관련 과목들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친한 친구가 학교 학생상담 센터에서 조교를 하고 있어서 수시로 놀러 가서 검사 놀이를 했거든요. 마치 타로 카드놀이하듯이 검사 도구를 꺼내서 그날 기분에 따라서 하고 싶은 검사를 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이런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것도 가능했습니다.


검사 놀이를 열심히 하다가, 로샤 검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잉크반점 검사, 정말 amazing 한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표준화된 검사는 이 검사가 무엇을 측정하려 하는지가 느껴졌는데 잉크반점 검사는 도대체 무엇을 검사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수검자의 내면의 세계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검사였죠. 역시 저는 그 친구와 로샤 검사 놀이를 했고, 그 친구가 열심히 채점을 해주었습니다.


다른 검사는 검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로샤 검사의 결과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제 내면의 흔적들이 드러나서 그 친구에게도 수치심을 느꼈고, 물론 그 친구는 결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조차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두려워졌습니다. 검사 보고서에 써야 하는 단어와 어휘, 문장들도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한 사람을 규정한다는 것, 판단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게 두렵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글로 남긴다는 것의 무게를 그 당시에는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 같네요. 물론 지금도 글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보고하는 것을 좀 버거워 하긴 합니다. 말은 말하면서 휘발되지만, 글은 보관이 된다면 영원히 남을 수 있기 때문이죠.


석사 4학기를 마치고, 어마 무시한 내적 갈등을 했던 것 같네요. 임상 심리 못 하겠다 와 그래도 가던 길 가야지, 사이에서 무수히 많이 고민했습니다. 선택이 어려워서 내가 선택을 하기보다 상황이, 기관이 나에 대한 선택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버티면서 수련기관에 지원을 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를 선택해 주기를 바랐던 그 기관에서 다시 선택의 칼자루를 저에게 토스했고, 저는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수련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부터 저는 뒤늦게 취준을 했었습니다. 토익 공부도 하고, 여러 회사에 지원도 해보았지만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여성 나이 20대 후반은 취직하기 유리한 나이도 아니었거니와 공부만 했고, 다른 사회 경험도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과는 정말 모든 것이 달랐네요.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러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소소한 일들이라면 중, 고등학생 영어, 수학 과외도 하고, 논술 수업도 하고, 디자인 학회 논문 맞춤법 교정 일도 좀 했던 것 같네요. 그러다가 입시 학원 영어강사 일도 했었고요. 일이 아주 많았던 시기도 있고, 너무 여유로워서 쳐지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다가 어느 해 수능이 끝나고, 고3 수업을 많이 했던 해였던 것 같네요. 수능 날, 학생들이 해방감을 느끼는 것처럼 가르친 저도 해방감을 느끼고, 동대문으로 놀러 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리에 이상한 발진이 울긋불긋 보였습니다. 가을이고, 환절기라 일시적이겠구나... 했는데, 다음 날 그 발진이 더 넓게 다른 형태로 번져나갔습니다. 발진의 부위가 허벅지에서 팔, 엉덩이로 올라오더니 얼굴까지 울긋불긋하게 올라왔습니다.


하루는 내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과 연고를 처방받고, 먹고 바르고 했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발진이 가라앉더군요. 그래서 약을 다 먹고, 나은 줄 알고 며칠 지내면 다시 또 올라오고, 그런데 몸에서 발진이 올라오는 양상이 예측할 수가 없고, 점점 더 심해지더군요. 그래서 검사를 해보면 이상이 없다고 합디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네, 그다음에는 피부과로 갑니다. 피부과에서도 약과 연고를 처방해 줍니다.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으니,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검사를 하니, 몇 백가지 알레르기 항원을 검사해도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인성 알레르기인 것 같다고, 면역력을 강화하라고 합니다. 역시 피부과 약과 연고를 쓰면 조금은 나아지나, 약과 연고를 멈추면 또 반응이 심하게 올라옵니다.


그러면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다음 코스는 한의원이었습니다. 네, 한의원!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상 심리하려다가 상담 심리하게 된 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