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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연결되기 위한 고독과 집중의 시간

외침이란 단어마다 가슴이 쿵!

by 이아
외침과 밤이 그를 어린 시절에서 뜯어내고 그의 혈통에서 유괴하여 고독의 낙인을 찍어놓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하여 그를 그의 모든 혈족들에 돌이킬 수 없이 결속시켜 놓았다.

밤의책-실비제르맹



밤의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자유롭게 필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2022년 2월로 기억이 된다. '외침'이란 단어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던 시절이었다. 나는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벙어리처럼 내 속에 말이 고여만 가고,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시절에 얼마나 말하고 싶고, 외치고 싶었으면 노래를 불렀을까? 나의 글은 나의 '외침'이자 나의 '노래'일 수도 있겠다.


지금도 나는 노래하고 싶다. 그런데 이젠 자기 객관화도 되고, 에너지 수준도 떨어져서(20대, 30대에 할 수 있는 에너지와는 다른 상태임) 노래를 직접 부르는 것이 아니더라도 글로 써서 일단 내 눈으로 보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또 어찌 알리?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어떤 기회의 문이 열려서 노래할 수도 있을지도.. 거창하게 프로페셔널한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취미로 즐기는 수준으로 노래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노래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단계는 분명 있는 것 같다.


글과 운동, 한 땀 한 땀 매일매일 통과해나가야 하는 과정! 오직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집중하는 것! 한 땀 한 땀 통과하면서 흘리는 땀(sweat)만이 나를 나의 꿈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이건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내 몸으로 입증이 된 부분이라 더 설득력 있게 힘을 실어 말할 수 있다.


상담 일을 그렇게 해왔다. 끝없는 자기 의심과 자기 회의에 걸려 넘어져서 [나는 상담을 감히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낙인찍었다. 그리고 돌아돌아 굽이굽이 당시 상담계에 돌아왔으나, 또다시 [나는 상담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취약한 인간] 임을 대면하고, 직면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는.. 또다시 감히 할 수 없는 인간임을 스스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통과했었다.


살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버렸던 시간을 지나서 겨우 살아나서 아주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한 발씩 아니 반 발씩 걸어 나왔다.


그러다 보니, 하늘이 도왔는지 내게 엄청난 일복이 주어졌다. 풍성하게 가열차게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too much 하게 원 없이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뜨겁게 나를 던졌다. 행복했다. 나로부터, 끔찍한 나로부터 달아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를 잃고,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일하면서 돈도 벌고, 일석이조 아닌가?


그렇게 열심히, 거의 미친 사람처럼 달리다가 하늘의 도움인지, 그렇게 될 일인지 소속된 상담 센터가 폐업을 하게 되었고, 나는 동료와 일자리를 다 잃은 느낌을 느꼈다. 억울하고, 비참하고 외롭고 막막했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로 상한 나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또다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하나하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와 다시 만나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상담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나는 늘 내담자들과 함께였고, 내담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시간조차 내담자를 생각하는 상담 중독자였다. [칸막이]란 내 사전에 없었다.


이런 상태론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혼자 만의 시간을 늘려가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체력을 올리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다. 안다..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몸과 마음은 한 팀이다.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면서 나의 본질(본성)과 마주하게 되었다. 운동은 팀운동이 아닌 이상 고독한 작업이다. 고독하게 땀을 흘리면서 한다는 면에서 운동이나 글쓰기나 참 비슷한 작업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없어진 꿈을 다시 복구시키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쓰기와 운동, 운동과 글쓰기이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칸막이]를 쳐서 나와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의 낙인을 찍는 이유는 계속 고독하고 고립되어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좀 더 잘 연결되고, 섞이고, 사랑하기 위해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남을 잘 돌보기 위해서 나를 더 잘 돌보고, 더 잘 연결되고, 교류하기 위해서 혼자서 땀을 흘리고, 삑사리 내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외침과 밤이 그를 어린 시절에서 뜯어냈다.

밤의 책-실비제르맹


나에게도 뜯겨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는 속시원히 내 이야기를 차근차근 다 할 날이 올 수도 있고, 영원히 오지 않아도 어쩔 수는 없겠지만, 그 뜯겨진 어린 시절이 나에게 고독의 낙인을 찍은 것은 인정한다. 그 고독은 더 잘 연결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하기 위한 고독이었다.


고독한 인간, 나는 고독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고독이 지긋지긋해서 어쩌면 상담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여 지금껏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요즘 들어서 다시 고독을 나에게 공급해 줘야겠단 결심이 생긴다. 상담사라는 업은 끊임없이 내담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를 돌보는데 소홀해지기가 쉽다.


어쩌면 나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일부러 상담을 택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나 자신이 얼마나 버겁고 숨 막히도록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정말 짠하다. 그런데 상담 일을 하면 할수록 나를 돌보아주고 싶단 욕구가 올라온다. 일단 내가 살아야 남을 돌볼 것이 아닌가? 내가 나를 수용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결코 타인을 수용할 수가 없다. 나도 안 되는 수용을 내담자에게 강요할수도 없고, 안 되는 또는 못 하는 수용을 하는 척 한다면 그건 거짓말 또는 사기 행위가 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남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건 기만이다. 기만이 사람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는 겪어본 당사자가 제일 잘 알 것이다. 상담자에게 있어서 진실성이 최고의 무기이자 전략인 것 같다. 상담을 하면 할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요즘 내담자들, 독자들은 정말 똑똑하다. 상담자/작가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너무 잘 알아차리신다. 역지사지다. 감동을 주는 작품이나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진실성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뻥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실을 발굴하고, 내 안의 진실과 맞닿기 위해서 나는 지금 고독을 선택했다.


이 사람 걱정, 저 사람 걱정, 여기 가서 이 사람을 만나고 오면 이 사람에게 마음이 쓰이고, 저기 가서 저 사람을 만나고 오면 저 사람에게 마음이 쓰이고,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생각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어떤 경우엔 감정의 소모가 너무 커서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도 한다.


이렇게 몇 년을 가열차게 보내다 보면 내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감각마저 찾아온다. 내가 사라지면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몸과 마음이 소진된다. 나는 이 소진감을 어떻게든 달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택한 것은 고독이다. 고독의 도장을 찍으면 자유로워질 것 같다. 고독의 도장을 파자. 이 도장은 더 잘 연결되고, 더 잘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기 위한 도장이다.


지금, 고독한 시간이다. 모두로부터 물러나서 모든 자극에 [칸막이]를 치고, 노트북과 나 하나만 남았다. 이런 시간을 더욱 자주 길게 가져볼 계획이다. 무념무상의 시간을 만들어서 마음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그냥 써보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읽고 보는 것도 재미있고 좋지만 이렇게 마음에서 떠오르는 주제를 잡고 써보는 시간이 나를 회복시켜줄 것 같다.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가 되고 나면, 나는 다시 모든 것에게 다가가서 결속될 힘을 얻게 될 것 같다. 이미 어느 정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나를 끊임없이 몰아세우고,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하고 아프게 하는 내 마음을 내가 잘 다루어나가고 싶다.


한때는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밖에서 들어오는 자극들,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 짧은 시간동안 밀도있는 경험을 하고 알게 된 것은 밖은 그냥 비어있다는 것이다. 외부는 그냥 계속 대상과 배경이 바뀔 뿐 비어있고, 그 비어있는 공간에 내가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굉장히 소모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동이라기보다는 어떤 맥락으로는 다소 미친 짓이다.


객관화도 잘되지 않고, 너무나 주관적이고 너무나 민감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고, 좀 다르게 해보고 싶다.


그 주관적인 내 세상에서 아이템을 얻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땀"이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흘리는 노력과 땀! 그리고 무수한 삑사리.. 삑사리가 두려워서 노래하지 않는다면 결코 노래를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디테일하게 계획하지 않고, 그냥 한 번 해 보는 것, 시도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 땀을 흘린다는 것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욕심내지 않고, 계속 땀 흘릴 것이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머무르다 보면 변화하는 나를 만날 것이고, 변화하고 성장한 나는 분명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성장시키면서 잃어버린 꿈 때문에 병든 가슴으로 숨어서 우는 삶과 작별하고, 함께하며 나누는 삶, 공존하며 서로를 안아주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꼭, 그렇게 되도록 이 고독의 낙인을 조금씩 지우면서 새로운 근육들을 조각할 거야. 몸에 근육을 조각하듯이 우리의 뇌에도 글쓰기로 연결되는 길을 아로새길 거야. 단단하게..


#외침과밤

#고독의낙인

#분리와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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