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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Feb 04. 2022

소설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독립출판記]


2020 8월 처음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김진해 교수님 수업 중 한 학기동안 책 한 권을 만들어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수업명은 <기록하는 인간: 호모비블로스>이었다.






수업 시간에 처음 책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기획안을 썼던 책이 <화니단로 여행자들>이었다. 그 무렵 막 소설 초고를 쓰기 시작했고, 학기가 끝날 무렵(11월)이면 기적처럼 원고가 완성돼 있을 거라고 믿었다. 


계산해본 결과 하루에 1000자만 쓰면 계획대로 원고가 마무리될 것 같았다. 처음 며칠은 1000자씩 썼고, 점점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 결국에는 종강 한 달 남았을 무렵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매일 8000자씩만 쓰면 돼."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에서 F를 받게 생겼으니까. 소설은 계획대로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온종일 모니터 앞에서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많았다. 단편소설을 쓸 때는 일주일 만에 원하는 분량의 원고를 쓰기도 했으니까 장편도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물성 있는 '책'으로 만들어질 나의 글 앞에서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조급했다. 


그래서 결국 <화니단로 여행자들> 원고를 잠시 미뤄뒀다. 마감이 생기면 무조건 기한에 맞추곤 했는데, 마감이 있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때부터 급하게 새로운 책을 기획하였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내 마음을 나열하는 (지금 생각하면)졸렬한 책이었는데 한 달 만에 원고를 다 썼다. 에세이는 편한 마음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인지 계획한 만큼의 분량을 쓸 수 있었다. 그때 급하게 기획하고, 기록하였던 아버지를 한참 욕하는 내 책을 다시는 펼쳐볼 수 없지만 그 책 덕분에 나는 아버지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고, 인디자인 툴을 익힐 수 있었고, 스스로 책 표지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호모비블로스 수업에서 책 한 권을 만들며 느낀 점은 절대 급하게 원고를 써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나에게는 디자인 감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사진 한 장도 미적으로 찍지 못하는 내가 표지 디자인을 잘 했을 리는 없다. 






2020-2학기 방학에 본격적으로 장편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2020-1학기 방학에도 원고를 썼고, 2021-1학기 방학에도 꾸준히 원고를 썼다. 물론 학기 중에도 썼다. 할 일을 다 끝내도 맘 편히 놀 수 없었다. 화니단로 여행자들 원고 생각을 하면, 할 일을 다 끝낸 순간은 2년 동안 하루도 없었다. 원고를 쓰는 2년 남짓은 괴로웠다. 끝이 없이 쓰고, 고치는 기간이었는데 정신 건강도 좋지 못해 침체된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다. 사람도 많이 만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쫓아오고, 압박하지 않았는데도 “끝내야만 한다”는 내 안의 목소리 때문에 쉬지 못했다. 


원고를 쓰던 시기의 나는 고여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일은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화니단로 여행자들 원고를 완성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끝을 내야만 하는 원고였고, 나는 스스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속해서 만들었다. 김진해 교수님 수업이 첫 번째 억압이었는데 실패했다. 두 번째 억압은 “지원금 사업”도전이었다. 지원금을 받고,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 기한이 정해진다면 쓰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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